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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파워 인터뷰] 2012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 문용린 서울대 교수 “책 읽는 소리, 병영마다 울려퍼지길…”

[파워 인터뷰] 2012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 문용린 서울대 교수

“책 읽는 소리, 병영마다 울려퍼지길…”

 

 

 

독서는 개인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국민 총 독서량((GNR, Gross National Reading)이 높은 국가는 그만큼 경쟁력 있는 국가로 평가된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무형의 전력인 소프트 파워의 출발점이 바로 책읽기라 할 수 있기 때문.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독서의 해, 문용린 2012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을 만나 ‘병영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글 유성욱 기자 / 사진 권윤성 포토그래퍼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

 

 

올해가 무슨 해인지 아는가? 그렇다. 대전엑스포 이후 19년만에 여수해양엑스포가 막을 올린 해이며, 여름이면 런던올림픽이 펼쳐지는 해이다. 하지만 올해는 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포한 ‘독서의 해’라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더 많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국민 총 독서량(GNR, Gross National Reading)을 5% 더 높인다는 목표하에 지난 3월 ‘2012 독서의 해’ 선포식을 갖고 하루 20분씩, 1년에 12권 책 읽기 권장, 책 선물하기 문화 정착, 주5일 수업제와 연계한 도서관 가기와 동네서점 가기 등 다양한 소통과 나눔을 주제로 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2012 독서의 해 캐치프레이즈는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 하지만 책 읽는 소리에 대한민국이 미동도 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사실 책 읽는 행위에까지 국가가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독서율이 심각할 정도로 저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초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그 실태가 우려를 사기에 충분하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한 권 이상의 책이라도 읽은 만 18세 이상 성인은 66.8%였다. 2004년 76%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인데, 국민 10명 중 3명 이상은 1년 내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한 성인 평균 연간 독서량은 9.9권으로 전년도 10.8권에 비해 약 1권 정도가 감소했다. 성인들의 평균 독서시간은 25.9분으로 평균 여가시간 194.8분의 13.3%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영상이 활자를 대신하고, 손바닥마다 스마트기기를 쥔 모바일시대라지만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5천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견디어 왔고 현재와 같은 번영을 구가하는 것은 항상 책읽기를 가치롭게 여기고, 책읽기에 전념하여 교양과 상식을 겸비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읽기는 우리의 귀한 문화정신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우리 한국인들 내면에 흐르는 정신적 가치와 삶의 이상은 ‘책 읽는 선비들’의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다양한 독서증진 정책과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 역시 21세기 지식기반사회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창의력과 상상력이라고 볼 때 그 힘의 바탕을 독서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핀란드 등 많은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국가 차원의 독서운동을 통해 독서문화 확산에 나서고 있다. ‘독서의 해’ 지정과 추진배경 역시 독서 선진국들의 선례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특히 영국의 경우는 유아 단계에서부터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산모가 아기 접종을 위해 보건소를 찾으면, 소아과 의사가 책 2권과 독서 매뉴얼을 챙겨주는 프로그램을 작동하고 있는 것.

 

 

 

 

군대 간 아들에게 동화책을 보내는 아빠

 

 

지난 2000년 제40대 교육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2012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 문용린 교수를 만난 것은 가느다란 빗줄기가 서울대 캠퍼스를 싱그럽게 적시던 5월 중순이었다. 문 교수는 이번이 마지막 학기다. 정년 퇴임하는 오는 8월이면 30년 동안의 자취가 남아있는 정든 연구실을 떠나게 된다.

 

푸근한 인상의 문 교수는 월간<HIM> 취재팀을 반갑게 맞았다. 이유가 있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문산의 30사단 자주포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취재팀을 만나 군 생활 9개월째인 아들 이야기부터 꺼낸 문 교수는 며칠 전 책을 한권 샀다고 한다.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대표작 『몽실언니』라고.

 

“군대에서 나오는 순간 치열한 경쟁사회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자신을 단련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군대라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드라이 한 나날만 보내기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밑바탕으로 돌아가 감성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저도 언젠가『몽실언니』를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경험도 괜찮은 것 같아, 아들에게 보낼 책 한 권을 산 거지요.”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을 맡고 계신데, 캐치프레이즈와 달리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지 않네요. 왜 그럴까요?

 

“사회 전반적으로 독서에 대한 무관심이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독서의 해를 준비하면서 국회에서 거의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독서 진흥을 위해 정부가 나서고 민간 전문가들도 힘을 합하고 있으니 조금씩 독서분위기가 진작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국가가 나서서 독서를 장려한다는 게 후진적인 행태는 아닌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 경쟁력이 독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독서캠페인을 하는 사례는 많은 선진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핀란드는 정부 부처에 독서 관련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책을 제대로 못 읽으면 사회적으로 낙후되니 국가가 돈을 대서라도 독서력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서죠. 그래서 2012 독서의 해가 가진 가장 큰 의미는 다양하게 펼쳐지는 독서 캠페인이나 이벤트보다도 국가가 나섰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요?

 

“인간진화의 역사는 두뇌발달의 역사입니다. 두뇌발달은 독서를 통한 상상력과 간접체험으로 활성화 되고 촉진되지요. 그래서 책읽기 즉, 독서는 문명사회의 한 척도가 되어 왔으며, 한 개인의 교양과 경쟁력을 판단하는 준거로 간주되어 온 것입니다.”

 

독서가 좋은 습관이라는 건 알지만, 개인에게 있어 독서의 효용이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교육심리학자인데, 바다보다 넓은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음도 개척해야 하는 영역이지요. 예를 들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별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를 소재로 한 뭉클한 수필 한 편을 읽다보면 누구나 종전에 갖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해저 2만리』라는 책으로 예를 들어볼까요. 그 책을 읽다보면 머리 속에 해저의 세계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지요. 독서란 그렇게 마음이라는 커다란 광장에 이런저런 건축물을 짓는 과정입니다. 마음의 광장이 텅비어 있으면, 황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지요. 게다가 책은 하나의 창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집에 창이 없다면 좁은 방안 풍경만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창을 하나 두면 지평선도 눈에 들어오고, 수평선도 바라보게 됩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당연히 시야가 넓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심각하지만 편협하게 책을 읽는 것도 문제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공감영역이 넓어지고 사고의 균형이 잡히는데 ‘나는 그 사람이 쓴 책은 안 봐’식의 편중된 독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저해하고 의식의 양극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병영 독서’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군 생활만큼 책읽기에 좋은 시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군 부대 독서운동을 펼쳐온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와 월간<HIM>의 노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칭찬 받으려고 질문한 게 아니라, 병사들의 책읽기에 도움될 만한 조언을 들으려고 한 건데…

 

“입시나 취업을 위한 공부에 매달리다보니, 독서를 지겨운 일로 생각해서 책과 담을 쌓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군대에서는 홀가분하게 책읽기의 맛을 즐기는 식이 좋을 것 같습니다. 딱딱하지 않은 위인전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시집을 권하고 싶어요. 영어로 된 동화책도 좋을 것 같네요. 인생을 살며 요긴한 영어까지 덤으로 익힐 수 있을테니 말이죠. 어쨌든 쉬운 책을 다양하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Q가 높다고 군 생활 잘하지 않는다.

 

문용린 교수는 공군 장교로 군생활을 했다. 대학 졸업후 사관후보생으로 6개월 훈련을 받고 임관했는데, 자신의 전공을 살려 공군본부 인사참모부에서 조종사나 장교의 충원을 위한 적성검사와 심리테스트를 담당했다고.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문 교수는 우리나라에 EQ(Emotional Quotient)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이다. 기억력과 추리력, 계산력 등 지능지수를 뜻하는 IQ (Intelligence Quotient)만으로 세상을 잘 살 수는 없다. 오히려 삶의 많은 부분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지하는 능력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공부만 해도 그렇다. 대개 공부가 뒤처지는 이유는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공부에 대한 의욕, 공부에 대한 주의집중력, 공부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져 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가 부족해졌기 때문인 것. 이는 IQ가 아니라 EQ의 중요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한동안 ‘높은 EQ’는 ‘감성이 풍부하다’는 의미로 축소되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요즘에는 ‘EQ'대신 ‘정서지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서라는 정보를 이성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이야기하는데, 소통과 리더십이 성공과 행복을 결정하는 핵심역량이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정서지능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군 생활도 IQ가 높다고 잘하는 게 아닌 게 분명합니다. 먼저 군 생활의 의미에 대해 천착해야 합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공동체를 위해 일정 시간을 헌신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그런 희생과 헌신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니까 말이죠. 6․25때 나라를 위해 희생된 수많은 선배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런 자각이 군 생활 동안 힘이 되어줄 것이고, 거기에 군 생활의 의미를 더하는, 독서같은 개인의 노력이 2년이란 시간을 더욱 보람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문 교수도 군 생활 4년 동안 개인적인 목표가 하나 가졌었다고 한다. 불어를 마스터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원했던 대로 목표를 이루었으니, 군 생활을 누구보다도 의미 있게 한 셈이다.

 

“이건 별로 공개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제가 사실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 판타지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 읽다보니, 직접 한번 써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실제로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세계관이 씨줄 날줄로 얽혀있는 판타지소설입니다. 『해리포터』나『반지의 제왕』은 서양 기독교적인 신화가 바탕에 깔려 있지요. 그런데 우리 고유의 신화에도 그 이상의 스토리가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연구실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는데, 독서는 그렇게 인생을 설레게 만들고 풍부하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책 읽는 소리가 병영마다 울려퍼지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