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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2012. 09 곰신데이트] 육군 제3탄약창 이성주 상병 & 이보라 양

[2012. 09 곰신데이트] 육군 제3탄약창 이성주 상병 & 이보라 양

 

 

 

육군 제3탄약창 이성주 상병 & 이보라 양

마음으로 속삭이는 수줍은 사랑

 

면회소 한쪽에서 손을 꼭 잡은 채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의 귀에 무언가 속삭이는 모습이 다정했다. NHK와 함께 진행한 촬영, 여러 대의 묵직한 카메라 앞에서 당황할 법도 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글/ 유희종 기자

사진/ 권윤성 포토그래퍼

 

 

서로에게 맞춰진 단 하나의 주파수

 

 

위병소에서 시작된 촬영. 하필이면 촬영 당일 유난히도 뜨거운 태양이 따라붙었다. 그늘이 없는 곳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지만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한 두 사람은 어색한 듯 신기한 듯 쑥스럽게 서로를 마주보았다.

 

어딘지 어색한 느낌은 촬영하는 내내 이어졌다. 1년 6개월을 만나온 커플답지 않게, 마주본 눈빛에서도, 함께 걷는 모습에서도 풋풋한 느낌이 전해지는 묘~한 두 사람. 넌지시 운을 띄워보자 보라 양이 웃음을 터뜨린다.

 

“친구들도 저희를 보면 너무 어색해 보인다고 그러거든요. 저흰 정말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는데….”

 

벌써 만난 지도 1년 6개월에 접어들었으니 그녀의 말처럼 편안할 만도 한데,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편안함보다는 갓 연애를 시작한 커플의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두 사람의 호흡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속속 엿보였다. 폭염을 피해 들어선 냉면집에서 자연스럽게 보라 양의 냉면을 잘라주는 이성주 상병의 모습, 긴 군복 소매를 접어올린 채 더위에 지친 이 상병에게 연신 부채질을 해주는 보라 양의 모습.

 

촬영 때문에 긴장한 기색은 역력했지만 매 순간, 모든 포커스가 서로에게 맞춰져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공기처럼 배어들어 있었다.

 

 

 

달콤한 고백과 만남, 그리고 잠시만 안녕…

 

 

햇볕을 피해 걸으며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해 물었다. 단번에 2011년 2월 21일이라고 날짜를 읊는 이 상병, 그가 먼저 용기를 냈다고 한다.

 

친구를 통해 처음으로 만난 보라 양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만난 지 사나흘 만에 했던 명동 데이트. 터미널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던 이 상병은 함께 기다려주던 보라 양에게 말없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스케줄 관리 화면이 뜬 액정에는 바로 그 날짜 그 시각에 ‘보라와 1일째’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가볍고 차가운 소통의 도구에서 너무나 달콤한 고백이 피어오르던 순간.

 

“터미널 앞에 서 있는데, 보라와 헤어지기 싫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처음엔 대답을 망설이던 보라도 한참만에 “잘해라?”라는 장난 섞인 대답으로 제 고백을 받아줬어요.”

 

그렇게 사랑스러운 만남을 시작한 두 사람이지만 이내 고비를 마주했으니, 2주 앞으로 다가온 이 상병의 훈련소 입소일. 덕분에 1주일 내내 데이트를 하며 해보고 싶었던 것들은 다 해봤단다. 당시 롯데월드에서 커플티를 입고 찍었던 사진은 아직도 보라 양의 지갑에 곱게 끼워져 있다.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고난은 입대 후에 찾아왔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외박이 취소되고 휴가가 연기되며 몇 개월씩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상황이 왔다.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상대방을 생각해 건넨 말이 오히려 가시 돋친 말로 전해지고, ‘소홀해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겨났다. 결국 오해가 더 큰 오해를 불러오면서 헤어지자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고.

 

하지만 표현에 서툴렀을 뿐 마음은 그대로였던 커플은 다행히 위기를 이겨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촬영 당일에도 서툰 표현 방식은 그대로였다(!) 서로에게 고마운 점을 묻자 머뭇거리며 대답은 없고, 갈수록 분위기는 어색해지고….

 

사실은 작곡을 전공한 선임에게 도움을 청해 멜로디를 짜고 가사를 써서 보라 양을 위한 노래까지 직접 만들었다는 ‘노력파’ 이 상병. 그러나 멍석을 깔아놨는데도 정작 살가운 말 한 마디 전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다행히 데이트는 천안의 한 카페에서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마무리했지만, 아쉬움과 미안함이 못내 컸던 걸까. 다음날, 월간 <HIM> 편집국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보라에게 고마운 게 참 많은데, 어제는 말을 못 해서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제 지나가듯 말했던 면회며 도시락도 참 고맙고요. 무엇보다 고마운 건, 상병이 된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써주는 편지에요. 하루도 안 빼놓고 자기 일상을 일기처럼 적은 편지를 보내주거든요. 기다려줘서 고맙고, 조금만 참고 힘내자고 전해주십시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전화기 앞에서 용기를 냈을 이 상병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두 사람의 사랑이 좀 더 큰 소리로 솔직하게 서로를 지켜가기를 기대해본다.

 

 

 

우리 이런 커플이야

 

 

군화 이성주 상병

 

표현은 다소 서툴지만 배려 깊고 섬세한 로맨티스트. 보라 양을 생각하며 노래를 작곡, 작사하고 직접 기타까지 배우는 열정의 소유자다.

 

곰신 이보라 양

 

어딘지 이국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이 상병의 예쁜 여자친구. 이 상병의 말에 따르면 ‘청개구리’ 기질이 있다지만(?) 장거리 면회에도 도시락을 준비하는 고운 정성을 보여준다.

 

커플 이력서 친구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만난 지 나흘 만에 연인으로 급진전한 커플. 달콤한 연애기간보다 군화 곰신으로서의 기다림이 더 길었지만, 아직도 서로의 곁에서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풋풋한 두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