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콜라의 Sweet Valentine
인터뷰는 늦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싸늘한 밤, 점퍼와 담요로 중무장한 채 아침 일찍부터 스케줄을 소화했을 쇼콜라는 지친 기색도 없이 깔깔대며 웃곤 했다. 스튜디오를 채운 ‘I Like It’을 흥얼거리면서, 촬영 소품으로 준비한 카메라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작은 움직임에서도 진한 초콜릿처럼 달콤한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글 · 유희종 기자 사진 · 조상철 A&A스튜디오 디렉터
즐거운 변신으로 돌아왔다!
처음 대중 앞에 섰을 때와는 다소 달라진 모습이었다. 데뷔곡 ‘신드롬’으로 무대에 오를 때는 귀여운 동생 같더니, 신곡 ‘I Like It’으로 돌아온 지금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하얀 얼굴로 ‘인형돌’이라 불리던 이들이 ‘모델돌’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는 사실도 그들의 ‘폭풍성장’을 입증했다.
강한 비트의 노래에 맞춘 터프하고 파워풀한 안무, 강렬한 눈빛까지. 이렇듯 완벽한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흔들리지 않는 실력과 부단한 노력 덕분이다. 올해로 16살이 된 두 막내 티아와 멜라니도 성숙하고 강한 분위기의 신곡 콘셉트를 제대로 소화해내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나이가 어린만큼 표정이나 동작 하나하나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는 티아의 말에서 프로라는 자부심이 드러났다.
“일이니까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 하고, 어른스럽게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이는 어리지만, 전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예인이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애늙은이’라는 별명처럼 의젓한 대답이었다. 동갑내기 친구의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며 멜라니 역시 마음을 다잡고, 이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이자 맏언니인 소아는 늘 귀 기울여 들어주는 ‘엄마’처럼 멤버들을 다독인다.
한창 자리를 잡고 얼굴을 알려야 할 데뷔 초기. 오랜 시간 5명이 서 있던 자리를 이제는 4명이서 채워야 한다는 부담, 180도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는 긴장감도 있었지만 주춤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쇼콜라의 첫 미니앨범이 탄생했다. 타이틀로 내세운 ‘I Like It’처럼 강한 댄스곡부터 후속으로 준비 중인 ‘하루만 더’처럼 리드미컬하고 차분한 곡까지 다양한 색을 담았다. “변신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는 쇼콜라. ‘하루만 더’로 다가올 또 한 차례의 숨가쁜 변신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혼혈이 아닌 실력으로 이슈가 되고 싶어요”
쇼콜라의 데뷔를 앞두고 ‘혼혈돌’이라는 낯선 단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줄리앤, 멜라니, 티아 세 멤버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었기 때문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외모, 조금 다른 성장배경이 실력보다 이슈가 되리라는 우려도 있었다. t윤미래나 인순이 같은 선배 가수들이 연예계에서 실력과 존재감을 빛내고 있었기에 비교하는 시선도 따가웠다. 평균 나이 18.5세의 멤버들이 감당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짐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쇼콜라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데뷔 전부터 혼혈이니까 이슈가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혼혈돌’이라는 말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우선은 이슈가 되고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데 감사했죠. 선배님들과 비교하시는 것도 저희에 대한 기대라고 생각하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어린 두 멤버의 ‘철든 멘트’가 날아왔다. 유일한 ‘토종 한국인’ 멤버 소아 역시 “막상 만나보면 누가 혼혈 멤버인지 못 알아보시는 분도 많다”며 “소외감이나 부담보다는 묻어가는 기분이라 오히려 좋다”고 넉살좋게 웃었다.
혼혈 멤버가 있어 재미있는 순간도 많다. 호주에서 5년 동안 유학했던 소아까지 전 멤버가 영어와 한국어를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급할 때는 두 언어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는데. 특히 티아와 멜라니의 실수열전이 사뭇 재미있다. 가사를 외워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마음이 급해 ‘외울 시간 좀 주세요!’ 대신에 ‘Give me some time to 외울!’이라고 외치거나, ‘물 어디 있어?’ 대신 ‘물 어디야?’라고 묻는 일도 다반사다. 서로의 실수담을 폭로(?)하며 까르르 웃는 두 사람. 혼혈이기에 받는 시선 너머에는 여느 열여섯 소녀와 다를 바 없는 장난기어린 표정과 활기가 숨어 있었다.
여기서 잠깐, 4색 매력 쇼콜라의 멤버들은 누구?!
소아 (23)
쇼콜라의 리더. 별명은 엄마.
호주 브리즈번에서 디자인 전공, 휴학 중.
친한 연예인은 동갑내기인 ‘살찐 고양이’!
“날이 많이 추운데 내복 다 껴입고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하세요! 힘드실 텐데 TV로 쇼콜라 보시고, 노래도 들으면서 많이 힘내세요~”
줄리앤 (20)
랩 담당. 별명은 할머니(!)
침, 마사지, 한약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축구, 배구, 수영, 기계체조까지 운동이라면 만능.
햄버거보다 밥을 좋아하는 한식파.
잠꼬대로 대화가 가능하다.
“겨울 이겨내고 힘내실 수 있게 저희 쇼콜라 많이 불러주세요! 즐거운 무대 만들어드릴게요!”
티아 (16)
나이는 어리지만 속 깊은 막내.
물론 별명은 애늙은이, Big Baby.
여린 외모와 달리 좋아하는 음식으로 순대국을 외쳤다.
감기에 걸린 멜라니에게 홍삼을 건네는
올드한 센스를 자랑한다.
“심심하고 힘드실 텐데 저희 보면서 항상 힘내세요. 오빠들이 외롭지 않도록 TV를 통해서나마 많이 인사드릴게요! 저희 무대 보면서 신나고 행복해지셨으면 해요.”
멜라니 (16)
가장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막내.
별명은 초딩, 취미는 이층침대 위에서 잠든 멤버들을 지켜보는 것. 송탄 미군부대에서 자라 새벽 5시만 되면 울려퍼지는 애국가가 그립다.
“많이 추우시죠? 군인으로서 겪는 군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힘내세요! 밸런타인데이에는 쇼콜라가 오빠들의 초콜릿이 되어드릴게요!”
군대가 키운 쇼콜라?
줄리앤, 멜라니, 티아는 모두 독특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다. 주한미군인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을 부대 안에서 보낸 것. 민간인보다 군인이 더 자주 보이는 부대에서 생활한 탓에 여느 소녀들처럼 군복을 보면 낯설게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친숙하고 편안하단다. 부대 안에서 살다가 서울에 처음 왔을 때는 높은 빌딩이 많아서 신기하고 놀랐을 정도. 덕분에 군인에 대한 애정도 유난히 깊다. 늘 우레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는 군 위문 공연은 걸그룹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무대로 꼽지만, 쇼콜라에게는 더욱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군부대의 독특한 생활과 안정감 역시 멤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성격의 티아는 부대라는 특수한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고 한다.
“부대는 어떻게 보면 갇힌 공간이지만, 분명한 규율과 규칙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편하고 안전한 느낌이었어요. 서울에서 합숙을 하고 있는 지금은, 밖에 나서기가 겁이 날 때도 있어요. 워낙 생각도 많은 편이고, 자라면서 부모님께 ‘늘 조심하고 행동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반면 서울에 오자 ‘자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멜라니는 아직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성격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거리로 나서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멜라니가 간판 아래에서 뛰어다니거나 하면, 티아는 “멜라니! 간판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면 너 죽어!”라면서 걱정할 정도라고.
멜라니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새롭고 자유로운 서울 생활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다이어트와 바쁜 스케줄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 원래 편식이 심해서 야채는 잘 먹지 않았지만 요새는 배가 고프니까 뭐든지 먹게 됐단다. “뺏기기 전에 얼른 먹어치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먹다 보니 꼭 군대 같다”는 비유가 친근한, 영락 없는 군 가족이다.
‘My Funny Valentine’
2월의 하이라이트,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큰 한숨소리만 푹푹 흘러나왔다. 지난해에도 줄리앤과 멜라니는 직접 만든 초콜릿을 남자친구 대신 소속사 식구들에게 나눠줬다더니, 아무래도 올해도 쇼콜라의 고백을 받을 이는 장병들뿐이지 싶다.
설상가상으로 티아는 밸런타인데이마다 나쁜 일만 일어난단다. 친구와 대판 싸우든, 어딜 다치든 하는 안 좋은 날이어서 들뜨기는커녕 조심하게 된다고. ‘밸런타인의 저주’가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무렵, 멜라니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을 털어놓으며 만장일치로 ‘밸런타인데이 종결자’로 등극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어요. 미국 학교에는 복도에 학생마다 개인 사물함이 있잖아요. 밸런타인데이에 제 사물함을 열었는데, 안에 곰인형과 풍선이 잔뜩 들어있는 거예요. 뛸 듯이 기뻤죠. 그런데 그걸 넣어놓은 남자아이가 제가 사물함 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슬쩍 나타났어요. 그러더니 ‘네 사물함인 줄 몰랐어. 잘못 넣었다’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제 손에서 인형이랑 풍선을 빼앗아갔어요! 알고 보니 다른 여자애에게 주려던 거였더라구요.”
지금은 옆구리 시리기가 군인 못지 않지만 언젠가 밸런타인데이에 정성껏 만든 초콜릿을 선물할 사람이 생기고, 다이어트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것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이들의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쇼콜라로서의 가장 큰 바람은 무얼까.
“이제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능이나 다른 분야에서도 한 명, 한 명의 매력을 알리고 싶고요.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여성스럽고 청순한 느낌의 ‘하루만 더’는 안무나 무대가 정적인 만큼 노래에 더 신경을 써서 준비했으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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