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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2012. 05 곰신데이트] 육군 제9사단 3789부대 권수민 일병 & 이윤지 양

[2012. 05 곰신데이트] 육군 제9사단 3789부대 권수민 일병 & 이윤지 양

 

 

 

“믿음으로 완성하는 사랑”

 

빳빳하게 다린 군복 차림으로 호숫가를 서성이는 권수민 일병의 모습은 퍽 들떠 있었다. 저만치서 푸른 코트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이윤지 양에게서도 들뜬 설렘이 번져 나왔다. 봄날의 호수공원에 서 있는 무지개가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었다.

 

글/ 유희종 기자

사진/ 권윤성 포토그래퍼

 

추억의 소중함을 아는 사랑

 

 

육군 제9사단 3789부대의 권수민 일병과 곰신 이윤지 양은 이제 4년차가 된 동갑내기 커플이다. 둘만의 데이트가 아닌 취재진을 대동한 자리였지만, 서로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익숙하고 편안한 공기를 만들어낸 비결은 함께해온 오랜 시간이 아닐까. 거의 한 달만에 만났다며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는 군화와 곰신 커플 덕분에 촬영은 내내 활기가 넘쳤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학교는 서로 달랐지만 친구의 소개로 만나 조금씩 마음을 키워왔다. 처음에는 윤지 양이 먼저 정성어린 감동의 도시락을 싸다주며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지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변신해 나타난 윤지 양의 모습에 권 일병이 넋을 놓고 반했던 날부터 상황이 조금씩 역전됐다고. 아직까지 두 사람은 누가 더 먼저, 많이 좋아했느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글쎄, 두 사람의 눈에서 서로를 향한 콩깍지가 벗겨지는 날이 과연 오려나 싶을 뿐.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연애는 생활관에서도 유명하다. 자주 날아드는 편지는 물론이고 선임들 몫까지 하나하나 챙겨 보낸 소포까지, 윤지 양의 정성에 ‘여자친구 참 잘 뒀다’는 부러운 시선이 권 일병을 향한다고 했다.

 

“편지도 자주 해주고 미니홈피에 글도 자주 남겨줘서 늘 힘이 납니다. 특히 신교대에 있을 때, 저희가 입대 전에 쌓아온 추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준 건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윤지 양은 오히려 권 일병이 만들어준 추억들에 고마움을 말한다. 하트 모양으로 촛불을 켜놓고 기다려준 잊지 못할 이벤트부터 첫 휴가의 즐거운 기억까지.

 

“짧기만 했던 첫 휴가 땐 수민이네 할머님 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밥을 먹었어요. 그리고 놀이공원처럼 지금까지 함께 놀러갔었던 곳도 다시 가봤죠.”

 

첫 휴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윤지 양은 권 일병의 가족들과 살갑게 지낸다. 평소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느라 힘이 들 텐데도 종종 권 일병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에 가서 일손을 돕는다. 자주 연락을 드리고 찾아뵙거나 아르바이트 월급을 타면 맛있는 것을 사드리기도 한다니, 권 일병의 빈자리를 딸처럼 지켜드리고 있는 셈.

 

일상 속에 서로를 배려하는 것은 권 일병 역시 마찬가지. 평소 윤지 양이 지나가는 말로 건넨 한 마디도 잊어버리는 법이 없다.

 

“수민이는 제가 어딜 가고 싶다고 하면 나중에라도 꼭 데려가 줘요. 어쩔 땐 말한 저도 잊고 있었을 만큼 사소한 얘기도 늘 기억해주고요. 그런 세심한 모습이 제일 예쁘고 고마워요.”

 

연인의 얼굴에 떠오르는 기쁨이 나의 행복이 된다. ‘나로써 너를 채우는’ 지극한 사랑일 것이다.

 

 

 

 

 

추위를 이겨낸 꽃이 더 아름답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서 유난히 애틋함이 엿보인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4년이라는 시간을 견고한 추억으로 쌓아온 이들에게도 한 순간 위기가 있었다고. 한 차례 짧은 이별로 가슴아파했던 것이 지난 2월, 그리 오래지 않은 이야기다.

 

“일하느라 바쁜데 자꾸 전화를 걸고, 받지 않는다고 불평하곤 했었습니다. 막상 통화가 되면 제가 힘든 것만 늘어놓고 윤지의 힘든 이야기는 들어주지 못하면서도요. 군대에 있어 이것저것 챙겨주지도 못하면서 집착이 늘어갔어요.”

 

권 일병은 군화와 곰신 커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털어놓았다. 서로 다른 상황, 서로 다른 환경에서 점점 조바심을 내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마음이 상대에게 부담이 되어버리는 괴로움. 부대에서 음악을 자주 듣는 권 일병이 슬픈 노래를 들을 때마다 윤지 양을 생각했다는 것만 봐도 이별의 아픔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떠나서가 아니라 힘든 상황을 이겨내야 했기에 잠시 이별했던 이들은 결국 다시 만났다.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믿기로 다짐하면서.

 

“보고 싶다고, 면회를 와줄 수 있냐고 물을 때 일을 해야 한다고 거절했던 게 마음에 걸려요. 바쁘다고 전화를 자주 못 받은 것도 미안했고요. 하지만 한 번 헤어졌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오히려 계속 기다릴 자신이 생겼어요. 수민이도 떨어져 있고 싶어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니까요.”

권 일병이 입대하던 날,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는데 갑자기 아쉬움과 눈물이 밀어닥쳤다는 윤지 양은 이제는 권 일병이 곁에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간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익숙함은 곁에 없어도 괜찮아서가 아니라, 곁에 없어도 얼마든지 서로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다가 군인 손님이 오면 수민이 생각이 많이 나요. 군인을 보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권 일병의 군복 입은 모습이 제일 멋지고 좋다는 윤지 양은 이제 뼛속까지 고무신! 최근에는 한술 더 떠, 권 일병에게 장기 복무를 하면 어떻겠냐고 오히려 권하고 있다.

 

 

아픈 기억까지 배려와 믿음으로 보듬어 안을 줄 아는 의젓한 커플에게, 서로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우선 권 일병이 꺼낸 말은 모든 군화의 마음을 대변하는 한 마디, ‘전역할 때까지 잘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일하느라 바쁘더라도 밥 거르지 말고, 아프거나 다치지도 말고 건강하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였다. 윤지 양의 당부는 ‘변하지 않고 지금처럼만 지냈으면 좋겠다’는 것. 그녀가 덧붙인 말처럼, 이들을 비롯한 모든 군화 곰신 커플들에게 무사히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전역을 맞이하길 바라며 진심어린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