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조정익 ‘이하 조 이병’) 이병은 짧은 머리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부드러운 이미지가 더 돋보였다. 짧은 머리 때문에 우수에 찬 그의 눈빛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 하지만 그의 중저음 목소리와 다부진 몸매는 더욱 다듬어져, 어엿한 ‘군인’의 면모를 띠고 있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조 일병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취재/박현주 기자
기획/홍민석 편집위원
진행/오상훈 기자
사진/임재문 (A&A 스튜디오 포토 디렉터)
블로그/민승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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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야전수송교육단의 훈련 반장, 조정익 이병
조 이병은 제3야전수송교육단에서 훈련 반장으로 복무 중이다. ‘훈련’과 ‘반장’의 조화는 그를 강하기만 한 군인으로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그는 내면이 따뜻한 훈련 반장으로서 믿음직스럽게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제3야전수송교육단은 운전병을 희망하는 교육생들이 모여 5주 동안 운전 훈련을 받는 곳이다. 그 속에 훈련 반장 조 이병이 있다. 그러나 조 이병이 그들의 운전 훈련을 맡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하는 일은 교육생들이 훈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부모 역할이 되는 것. 야수단에 배치된 후 가진 최초 면담시 조 이병은 중대장(강영래 대위)에게 “본인을 연예인 유건이 아닌 인간 조정익으로 보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훈련 반장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했다. 뿐만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타 병사들이 꺼려하는 제초 작업을 자청해서 할 정도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군대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
훈련 반장 조 이병의 하루 일과는 교육생들에게 맞춰진다. ‘반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는 항상 교육생들에게 정갈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의 하루는 늘 이른 아침인 5시 30분에 시작된다. 용모를 단정하게 하려면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해야 하기 때문. 아침 식사 후 교육생들을 교육장으로 보내고 나면, 그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것은 없는지 부대 안을 꼼꼼하게 살핀다. 5주 동안의 훈련을 거친 교육생들이 야수단을 떠나면, 뒤이어 새로운 교육생들이 오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소한 것까지 챙겨야 하는 것. 하지만 조 이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훈련 반장’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고민이 있어 보이는 교육생을 만나면, 가만히 얘기를 들어줍니다.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고민이 무엇인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 이병은 ‘운전병’이 되고 싶었다. 가수로 활동한 이력이 있었지만 군악대를 지원하지도 않았다. 마땅히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 카레이싱을 즐길 정도로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운전병’이 자신에게 딱 맞는 보직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야수단에 배치되어 훈련 반장으로 복무하고 있다. 운전병은 아니지만 야수단에서 운전병 교육에 함께하고 있어 보람이 있단다.
조 이병은 따뜻함으로 교육생들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어디 사람을 상대로 한 일이 쉽던가. 더군다나 그는 선천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훈련 반장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지는 못했다고. 그가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수로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사람들의 표정 하나 하나에 신경이 쓰여 위축이 되기가 쉽다고 한다. 하지만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기 때문에 그런 부담감이 덜 하다고. 그런데 ‘노래하는 사람’에서 ‘연기하는 사람’으로 바꾸게 할 정도로 애를 먹였던 그의 낯가림은 신기하게도 군대에서 고쳐졌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많은 교육생들 앞에서 당당하게 의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고질병'에서 ‘완치’가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뿐만 아니라 그는 군대에 와서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배우 활동을 할 때에는 생활 패턴이 불규칙했지만, 군대에 오니 생활이 규칙적으로 될 수밖에 없더군요. 그 덕에 몸이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건강함이 반드시 몸짱은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프지 않는 몸과 마음에서 비롯된 건강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및 촬영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조 이병. 그가 진정한 헬스 가이다.
‘그’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
조 이병은 연예계 데뷔 ‘운’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운’이 데뷔 후에도 계속 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한국 사랑’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그 사랑은 군 복무까지 이어져 그를 군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군대에서 배운 것이 너무나 많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 이병은 17세 때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어느 날, 길에서 만난 한 남자로부터 가수 제의를 받았다. 그야말로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그렇게 그는 그룹 OPPA의 멤버가 되었다. 신인에게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 경쟁이라는 ‘산’을 넘는 자만이 대중들을 사로잡아 최고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 하지만 OPPA에게 그것은 조금 어려운 숙제였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 한 그는 다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연예 활동이 항상 그리웠기 때문. 그래서 그는 21살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불편했다. 미국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미국과 한국을 오고 가야 했던 것. 그런 가운데 한국에 정착해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다. 그래서 아버지와 진지하게 의논했다. 고맙게도 아버지는 아들을 말리지 않았다. 대신 시민권을 포기한 순간부터 그에게는 군 복무 문제가 늘 따라 다녔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군 복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저는 군대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연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제 주변에는 연예계 종사자들뿐입니다. 그래서 그 외에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선,후임을 떠나서 사회에서조차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합니다.”
가족의 사랑, 친구의 조언은 큰 힘
조 이병의 가족은 미국에서 산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왔을 때부터 늘 혼자였다. 어느 부모라도 한국에서 홀로 지내는 아들을 걱정하는 건 당연할 터.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조 이병의 남동생은 현재 공군 예비역이다. 때문에 부모님은 “동생도 잘 이겨냈는데, 형인 네가 못하면 안 된다”며 걱정하기보다는 힘이 되는 말을 해 주신단다. 행여라도 아들이 약해질까봐 마음의 끈을 더 조이는 것이다.
한편 그에게는 힘을 주는 친구도 있다. 바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 배우 온주완이다. 그는 군 선배로서 조 이병에게 조언을 해 준 유일한 친구다. 그가 조 이병에게 해 준 말 중 가장 기억이 남는 말은 무엇일까.
“주완이는 저에게 군대는 사회보다 따뜻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에서는 도태되면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지만, 군대에서는 마지막 남은 최후의 1인까지도 책임지고 끌고 간다고요. 군대 와서, 주완이가 말한 ‘전우애’를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조 이병에게 명언(?)을 남긴 배우 온주완은 현재 드라마에 출연 중이다. 조 이병은 친구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볼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 언제나 응원한다. 군 생활을 성실히 마친 그의 행동과 말투는 그 전보다 한층 성숙해져 그것이 연기에 그대로 반영이 될 것 같다고. 마침 그것을 온주완 본인도 스스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미 자신도 군대에서 느끼는 바가 많기 때문에 군 복무 경험이 향후 배우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조 이병. 그래서 그가 ‘배우 유건이 군인 조정익 이병에게 들려주는 말’을 남겼다.
“조 이병! 나는 네가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군대에서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 그러한 감정들은 분명 네 자신에게 돈보다 더 값진 금이 될 거라고 본다. 남은 군 생활 동안에도 지금처럼 잘 지낼 것을 믿는다!”
[제3야전수송교육단]
야전부대의 핵심전력인 전투운전병 배출
야전부대 배치시 즉각 임무 수행이 가능한 정예 전투운전병을 양성하는 제3야전수송교육단(단장 민광철 대령)은 1973년 창설 이후 전군 최다 운전병을 배출한 최대 규모의 수송교육단이다. 야수단에서 양성된 운전병은 지휘통제 통신차량을 비롯해 병력, 장비, 물자 등 각종 수송차량의 운전을 담당하는 야전부대의 핵심 전력이다. 야전군이 구보형 부대에서 기동형 부대로 전환되었고 전장상황도 기동력이 중요시 되고 있어, 전투운전병의 역할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해외에도 파병되어 평화유지군 활동에 기여하기도 한다.
조 이병은 제3야전수송교육단에서 훈련 반장으로 복무 중이다. ‘훈련’과 ‘반장’의 조화는 그를 강하기만 한 군인으로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그는 내면이 따뜻한 훈련 반장으로서 믿음직스럽게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제3야전수송교육단은 운전병을 희망하는 교육생들이 모여 5주 동안 운전 훈련을 받는 곳이다. 그 속에 훈련 반장 조 이병이 있다. 그러나 조 이병이 그들의 운전 훈련을 맡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하는 일은 교육생들이 훈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부모 역할이 되는 것. 야수단에 배치된 후 가진 최초 면담시 조 이병은 중대장(강영래 대위)에게 “본인을 연예인 유건이 아닌 인간 조정익으로 보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훈련 반장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했다. 뿐만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타 병사들이 꺼려하는 제초 작업을 자청해서 할 정도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군대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
훈련 반장 조 이병의 하루 일과는 교육생들에게 맞춰진다. ‘반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는 항상 교육생들에게 정갈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의 하루는 늘 이른 아침인 5시 30분에 시작된다. 용모를 단정하게 하려면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해야 하기 때문. 아침 식사 후 교육생들을 교육장으로 보내고 나면, 그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것은 없는지 부대 안을 꼼꼼하게 살핀다. 5주 동안의 훈련을 거친 교육생들이 야수단을 떠나면, 뒤이어 새로운 교육생들이 오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소한 것까지 챙겨야 하는 것. 하지만 조 이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훈련 반장’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고민이 있어 보이는 교육생을 만나면, 가만히 얘기를 들어줍니다.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고민이 무엇인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 이병은 ‘운전병’이 되고 싶었다. 가수로 활동한 이력이 있었지만 군악대를 지원하지도 않았다. 마땅히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 카레이싱을 즐길 정도로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운전병’이 자신에게 딱 맞는 보직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야수단에 배치되어 훈련 반장으로 복무하고 있다. 운전병은 아니지만 야수단에서 운전병 교육에 함께하고 있어 보람이 있단다.
조 이병은 따뜻함으로 교육생들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어디 사람을 상대로 한 일이 쉽던가. 더군다나 그는 선천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훈련 반장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지는 못했다고. 그가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수로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사람들의 표정 하나 하나에 신경이 쓰여 위축이 되기가 쉽다고 한다. 하지만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기 때문에 그런 부담감이 덜 하다고. 그런데 ‘노래하는 사람’에서 ‘연기하는 사람’으로 바꾸게 할 정도로 애를 먹였던 그의 낯가림은 신기하게도 군대에서 고쳐졌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많은 교육생들 앞에서 당당하게 의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고질병'에서 ‘완치’가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뿐만 아니라 그는 군대에 와서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배우 활동을 할 때에는 생활 패턴이 불규칙했지만, 군대에 오니 생활이 규칙적으로 될 수밖에 없더군요. 그 덕에 몸이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건강함이 반드시 몸짱은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프지 않는 몸과 마음에서 비롯된 건강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및 촬영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조 이병. 그가 진정한 헬스 가이다.
‘그’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
조 이병은 연예계 데뷔 ‘운’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운’이 데뷔 후에도 계속 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한국 사랑’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그 사랑은 군 복무까지 이어져 그를 군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군대에서 배운 것이 너무나 많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 이병은 17세 때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어느 날, 길에서 만난 한 남자로부터 가수 제의를 받았다. 그야말로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그렇게 그는 그룹 OPPA의 멤버가 되었다. 신인에게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 경쟁이라는 ‘산’을 넘는 자만이 대중들을 사로잡아 최고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 하지만 OPPA에게 그것은 조금 어려운 숙제였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 한 그는 다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연예 활동이 항상 그리웠기 때문. 그래서 그는 21살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불편했다. 미국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미국과 한국을 오고 가야 했던 것. 그런 가운데 한국에 정착해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다. 그래서 아버지와 진지하게 의논했다. 고맙게도 아버지는 아들을 말리지 않았다. 대신 시민권을 포기한 순간부터 그에게는 군 복무 문제가 늘 따라 다녔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군 복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저는 군대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연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제 주변에는 연예계 종사자들뿐입니다. 그래서 그 외에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선,후임을 떠나서 사회에서조차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합니다.”
가족의 사랑, 친구의 조언은 큰 힘
조 이병의 가족은 미국에서 산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왔을 때부터 늘 혼자였다. 어느 부모라도 한국에서 홀로 지내는 아들을 걱정하는 건 당연할 터.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조 이병의 남동생은 현재 공군 예비역이다. 때문에 부모님은 “동생도 잘 이겨냈는데, 형인 네가 못하면 안 된다”며 걱정하기보다는 힘이 되는 말을 해 주신단다. 행여라도 아들이 약해질까봐 마음의 끈을 더 조이는 것이다.
한편 그에게는 힘을 주는 친구도 있다. 바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 배우 온주완이다. 그는 군 선배로서 조 이병에게 조언을 해 준 유일한 친구다. 그가 조 이병에게 해 준 말 중 가장 기억이 남는 말은 무엇일까.
“주완이는 저에게 군대는 사회보다 따뜻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에서는 도태되면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지만, 군대에서는 마지막 남은 최후의 1인까지도 책임지고 끌고 간다고요. 군대 와서, 주완이가 말한 ‘전우애’를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조 이병에게 명언(?)을 남긴 배우 온주완은 현재 드라마에 출연 중이다. 조 이병은 친구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볼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 언제나 응원한다. 군 생활을 성실히 마친 그의 행동과 말투는 그 전보다 한층 성숙해져 그것이 연기에 그대로 반영이 될 것 같다고. 마침 그것을 온주완 본인도 스스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미 자신도 군대에서 느끼는 바가 많기 때문에 군 복무 경험이 향후 배우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조 이병. 그래서 그가 ‘배우 유건이 군인 조정익 이병에게 들려주는 말’을 남겼다.
“조 이병! 나는 네가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군대에서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 그러한 감정들은 분명 네 자신에게 돈보다 더 값진 금이 될 거라고 본다. 남은 군 생활 동안에도 지금처럼 잘 지낼 것을 믿는다!”
[제3야전수송교육단]
야전부대의 핵심전력인 전투운전병 배출
야전부대 배치시 즉각 임무 수행이 가능한 정예 전투운전병을 양성하는 제3야전수송교육단(단장 민광철 대령)은 1973년 창설 이후 전군 최다 운전병을 배출한 최대 규모의 수송교육단이다. 야수단에서 양성된 운전병은 지휘통제 통신차량을 비롯해 병력, 장비, 물자 등 각종 수송차량의 운전을 담당하는 야전부대의 핵심 전력이다. 야전군이 구보형 부대에서 기동형 부대로 전환되었고 전장상황도 기동력이 중요시 되고 있어, 전투운전병의 역할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해외에도 파병되어 평화유지군 활동에 기여하기도 한다.
야수단은 학사관리프로그램을 개발해 교육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야전부대와의 정보공유도 강화했다. 이러한 과학적 교육시스템으로 야전부대의 전투력 발휘를 보장하고 있으며, 실무 능력은 물론이고 강한 정신력을 갖춘 전투운전병을 배출하고 있다. 야수단은 미래전에 대비한 교육장 현대화 사업 추진과 첨단정보체계를 활용한 교육시스템 혁신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글 / 홍민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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