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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핸드볼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여군 부사관 오은주 하사, 김나영 하사

 

[HIM이 만난 2월의 HIM]

핸드볼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두 여군 부사관 오은주 하사, 김나영 하사

 

 

 

 

 

 

 

 

부사관은 미래 전장의 주역이자 창끝 전투력 창출의 주인공이다. 최근  병무청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출산율의 지속적인 감소로 2035년이면 병력자원이 지금의 절반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한 공백을 메울 대안은 바로 보다 전문화되고 정예화된 부사관이다. 부사관 비율은 현재 12.4%지만, 2030년까지 27%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아울러 전투형 강군의 첨병으로 부사관의 책임과 역할이 중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어 월간<HIM>이 최초로 부사관을 표지에 담게 됐다. 핸드볼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오은주 하사와 김나영 하사. 둘은 부사관 최초의 월간<HIM> 표지 모델이자 최초의 여군 표지모델이기도 하다. 우리 군의 미래를 밝히는 둘의 힘찬 도전 이야기를 들어보자.

 

 

# 창끝 전투력 창출 다짐하는 오은주 하사

여군 부사관으로 우생순 신화 쓰겠다.

 

고등학교 3학년때 핸드볼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 됐으며, 졸업 후에는 서울시청 소속 선수로 활동했던 오은주 하사. 부사관이라는 날개를 새롭게 단 그녀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향한 힘찬 도전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삶 전부를 바쳐 정상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그 당찬 각오를 들어보자.

글_ 유성욱 기자

 

 

"수류탄던지기가 가장 쉬웠어요"

대전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자라던 그녀가 핸드볼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동방여중에 입학한 직후다. 중학교에 핸드볼팀이 있었는데, 운동에 대한 재능을 눈여겨본 체육 선생이 핸드볼을 권유했다. 처음 접한 핸드볼이었지만, 재미도 있었고 두각을 보였다. 고등학교도 핸드볼팀이 있는 동방고로 진학했다. 자신이 속한 고등학교가 전국대회에서 매달을 따는 영광도 맛보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당당하게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됐다.

올림픽에서의 반짝 관심을 제외하고는 비인기종목에 속하는 핸드볼의 경우 진로가 그리 넓지 않다. 그럼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울 시청 핸드볼팀에 들어갔으니 운동선수로서 비전에 없엇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업팀 핸드볼 선수로 1년을 뛰며 자신의 미래 비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운동선수로 최고가 되겠다는 꿈에 회의가 들었다. 그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리라 고민하던 무렵, 우연히 그녀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주저하지 않고 도전해 자신의 해로운 꿈을 향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육군훈련소에서 5주동안 기초군사훈련, 육군부사관학교에서 12주 양성과정을 거쳐 지난해 11월 30일 마침내 빛나는 하사계급장을 단 것. 오은주 하사는 각종 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였는데, 오래달리기 등 체력테스트는 말할 것 없고 특히, 수류탄던지기에서 우월한 재능을 보여 핸드볼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켰다는 후문이다.

 

 

 

 

 

 

 

#이제야 나의 길을 찾았다는 김나영 하사

부사관으로 미래의 여성 리더 꿈꾼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했던 1월의 어느 날, 초급반 교육을 받느라 군기로 가득했던 김나영 하사를 만났다. 월간<HIM>최초의 여성 표지 모델이자 부사관 모델이라는 얘기를 하자마자 여느 20대 아가씨처럼 양볼이 붉게 변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녔던 그녀와의 만남을 전한다.

글_ 박철희 기자

 

 

성공과 한계를 동시에 느꼈던 핸드볼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핸드볼 경기를 보고 매료되었던 김나영 하사, 부모님의 반대로 곧바로 뜻을 이룰 수 없었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핸드볼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뒤늦게 시작했기에 간절함은 더욱 컸다. 또 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기에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덤비지는 않았다. 경기 영상을 구해 꼼꼼히 연구한 후 개인 훈련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갔던 것. 노력은 김 하사를 배반하지 않았다. 실력이 일취월장 늘어 국가대표 상비군이 되고, 세계 대회에서 우승컵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은 정체되었고, 운동선수로서는 왜소한 신체 조건도 걸림돌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어느 날, 여군 부사관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게 되었다. 순간 병사들을 지휘하던 여군을 보며 '나도 저렇게 멋진 군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린시절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주저없이 육군 부사관에 지원했고 엄청난 경쟁률을 당당히 뚫고야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