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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내 인생의 멘토] 김우식 전 부총리 겸 과기부장관 인터뷰


 김우식 전 부총리 겸 과기부장관


“새벽 5시 50분부터 2시간…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


“아직까지 그렇게 읽을 책이 많은가요?”라는 질문에 김우식 전 부총리는 웨스터 민스터 사원의 묘비명 이야기를 들려줬다. 얼마전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양이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곳. 그곳 한켠에는 영국의 대표적 정치가, 예술가, 과학자들의 묘비명이 있다. 그 중 한 묘미명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고 한다. ‘아, 임종의 순간에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 걸 잊었다!’. 김우식 전 부총리가 군대 간 청춘들에게 주는 메시지.


취재/ 유성욱 기자  사진/ 임재문(A&A스튜디오 포토디렉터)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을 놓쳐본 적이 없던 남자, 지역 명문 강경상고를 나와 1957년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들어간 그는, 40여년이 지나 자신이 몸담던 대학의 총장에 오른다.


평생을 그는 과학인재 육성을 통한 대학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해왔다. 그리고 2006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국가의 대계를 이끌게 된다.


그리고 이제 칠순의 나이도 훌쩍 넘었다. 대학총장, 그리고 장관, 부총리…남자로서  해볼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해봤으니, 이제 좀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김우식 전 총리는 요즘도 새벽 5시50분이면 일어난다고 한다. 청와대에서도 줄곧 해왔던 습관인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항상 그 시간이면 일과를 시작한다.


“먼저 10분간 명상을 합니다. 기도도 10분 하지요. 그리고는 매일 두시간 동안 책을 읽습니다. 새벽에 책을 펼치면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종이와 잉크냄새,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부지런히 배우고, 깨닫고, 나누자!”


연세대학교 GS칼텍스 산학협력관의 (사)창의공학연구원 집무실에서 만난 김우식 전 부총리(이하 이사장)의 책상에는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이 가지런히 구분되어 쌓여 있다. 읽고 있는 책으로는 법정스님의 저서가 눈에 띄었고, 읽어야 할 책에는 최인호의 신작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젊었을 때는 소설을 많이 봤습니다. 아마 제가 공학도여서 의식적으로 그랬나 봅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고는 분노로 잠을 못들었던 기억도 새록새록합니다. 이후로 참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해왔습니다. 요즘에는 인생 수양의 책들을 손에 잡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웨스터 민스터 사원의 묘비명처럼, 세상과 국가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해야겠다는 생각 너머 우선 자신을 좀 더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나 봅니다.”


김우식 이사장은 책읽기가 미래를 혁신하고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누구나 쉽게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체득화하여 지혜와 통찰력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역시 독서로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사이언스 북스타트운동 공동대표로,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가 펼쳐온 병영도서관건립국민운동 이사로 활동해 온 것도 그 때문. 지금까지 숱한 제자들을 군대에 보내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는 틈틈이 책을 손에서 놓지 말기를 바랬던 마음도 거기에 있었다.


김 이사장의 인생 철학 한가지를 들자면, ‘부지런히 배우고, 깨닫고, 나누자’이다. 지금까지 그는 그런 인생관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왕 하는 거 떠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김우식 이사장은 군 생활은 딱 6개월만 했다. 그렇다고 이른바 방위는 아니다. 대학원 마치고 늦은 나이에 논산훈련소로 간 그는 위생병으로 마산에 있던 군의학교 시절 구대장으로도 활동할 만큼 통솔력이 있었다. 훗날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매스컴에서 받은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조정자’란 평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던 게 아니었던 셈.


하지만 자대에 배치받고는 선임하사와 갈등을 빚는다. 틈만 나면 별의별 구실을 붙여 신참들의 군기를 잡으려는 선임하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는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 일과가 끝난 저녁시간 뵙자고 청했다. PX에서 맛있는 간식도 준비했다. 역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자 누구나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사람이었다.


선임하사는 김 이사장이 제대하고 나서도 오랜 기간 만남이 이어졌다. 선임하사가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그의 일자리를 알아봐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골에서 혼자 상경해 공부를 하며 폐가 좋지 않았는데, 결국 6개월만에 의병제대해야 했습니다. 짧은 군 생활이지만 인생에서 많은 걸 깨닫고 배웠던 기간이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 그토록 전우애를 나누며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도 군대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


김 이사장은 현빈이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것이 지금도 흐뭇하게 여겨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군대에 갈 젊은이나, 이미 군대에 가 있는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이왕 군생활을 해야만 하고, 하기로 했으면 절대로 떠밀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했으면 합니다. 하나뿐인 인생에 군 생활도 그 시절밖에는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당당하고 즐거우며, 또한 나중에도 훨씬 긍정적인 자신을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창의성과 융합, 그 두가지를 화두로

 

김우식 이사장의 요즘 화두는 ‘창의성’과 ‘융합’이다.


먼저, ‘창의성’에 대한 화두를 붙들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총장 재직 시절 대학을 차별성 있게 끌고 가기 위해 찾은 화두가 바로 ‘창의성’이었다. 그래서 교수 몇 명을 모아서 스터디부터 시작했다. 한번 매달리기 시작하자, 개인이나 조직에 그처럼 중요한 가치가 없다고 느껴졌다.


연구 모임은 사단법인으로 확대됐고, 200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창의성 아카데미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창의성이라는 게 어느날 갑자기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일상에서 창의적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자세’를 확산하는 게 목표다. 


창의성 아카데미는 한 기에 30명씩 15주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주요 석학과 문화예술인으로 구성된 강사진이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다.


김 이사장은 ‘창의성 전도사’로 활동하는 와중 사단법인 과학문화융합포럼의 이사장으로 ‘융합’이라는 가치의 확산에도 열성적이다. 과학기술인과 문화예술인, 인문사회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분야 상호간 교류와 융합을 통해 보다 창조적인 결과를 도출하고자 국내 최초로 시작한 포럼이다.


인생의 가장 많은 기간을 과학교육에만 매달려온 김 이사장은 인문학적인 소양과 문화예술적 상상력이 결여된 과학기술이 얼마나 한계가 많은지에 대해 절실히 깨닫는다. 예를 들면 미키마우스는 연간 매출이 6조원에 달하고, 세계 최고 갑부가 된 조앤 롤링이 쓴 해리포터 시리즈는 10년 동안 300조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가 10년 동안 반도체를 수출한 총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이다.


“창의성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과학기술과 인문학 융합의 중요성은 이미 세대의 트렌드이자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 두 마리 토끼를 좇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을 볼 것을 권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너무 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름다운 삶은 ‘가치적 성공’과 ‘성과의 성공’을 추구하는 데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달라지고, 결국 결과가 눈에 보이는 법입니다.”


작은 체구지만 당당함이 묻어나는 김 이사장, 여전히 확고한 목표로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그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은 단지 그의 조언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의 삶 자체가 이미 큰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