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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HIM이 만난 9월의 병사] 무적해병으로 변신한 오종혁 이병




감미로운 목소리의 그가 달라졌다
무적해병으로 변신한 오종혁 이병

경기도 화성에 있는 해병대사령부의 군악대실에 들어서자 날선 돌격머리의 오종혁 이병이 서 있었다. 클릭비 출신인 오 이병은 입대할 때보다 다소 마른듯한 모습이었지만 해병대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명찰과 세무워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는 오 이병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하게 살아있었다. 귀신잡는 해병으로 다시 태어난 그를 <HIM>이 만났다.



| 유희종 기자

진행 | 유성욱 기자

사진 | 임재문(A&A스튜디오 포토 디렉터)

블로그 | 민승기(인턴기자)



스스로에게 떳떳한 군인이고 싶다

오 이병은 해병대에 지원할 때 수색대를 1지망으로 적었다. 늦은 입대인 만큼 제대로 된 군 생활을 하고 싶어서다. 결국 2지망인 군악대로 입대하게 됐지만 전투병으로 복무하고 싶다는 바람을 떨칠 수 없었다. 입대 후에도 계속 수색대로 배치 받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 끝에 마침내 기회가 주어졌다.
해병대 제2사단 군악대에서 이미 자대생활을 하고 있지만, 오 이병은 이달 후반기부터 수색교육에 들어간다. 10주간의 교육을 이수하면 그토록 염원하던 수색대원이 될 수 있다. 수색대는 해병대에서 특수임무를 위해 조직한 부대로 육군 특전사, 해군 UDT/SEAL, 공군 CCT, 항공구조단 등과 더불어 자부심이 남다른 특수부대다. 수색교육은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극한의 훈련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바라던 일이긴 하지만 막상 교육을 앞두고 두려움이 밀려오진 않을까 염려스러워 물었더니 명쾌한 대답을 들려준다.

“두려움은 없습니다. 잘 해낼 겁니다. 평생에 2년뿐인만큼 스스로 자랑스러운 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다만 수색교육을 원하는 선임들보다 먼저 교육을 받게 돼 죄송하고, 친해지기 시작한 선임들과 이야기를 더 나누지 못해 아쉬움은 남습니다.”

휴가도 외박도 아닌 수색교육이 가장 기다려진다며 눈을 빛내는 이 남자, 천상 해병이다.



해병 오종혁을 만든 사람들

오 이병이 해병대 복무를 희망하게 된 데는 예비역 소령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릴 적, 그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내가 군대 가기 싫다고 하면 빼줄 힘이 있어?” 그러자 돌아온 대답. “힘은 있지. 하지만 그 힘을 널 해병대에 보내는 데 쓸 거야.”


그 한 마디로 해병대는 오 이병의 운명이 됐다.
오 이병이 아는 한 가장 청렴하고 강직한 군인이라는 그의 아버지. 오 이병의 형이 군에 지원했다가 장기대기자로 면제 판정을 받자 “내 아들은 군대에 보내야 한다”며 통고장을 들고 직접 병무청까지 찾아가셨다는 일화는 그 성품을 짐작케 한다.

그를 해병대로 이끈 사람이 아버지라면, 진짜 해병으로 만들어준 사람은 훈련병 시절 교관 소대장을 맡았던 이대성 중사다. 엄하기로 유명했던 이 중사는 훈련 초기 오 이병에게 말했다.


“네가 남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으면 그마저도 특혜가 된다. 남들보다 더 힘들게 하는 모습을 보여야 다른 훈련병들이 널 동기로 인정해줄 거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40km 행군을 마치고 파김치가 된 훈련병들이 휴식을 취할 때도 이 중사의 소대는 곧바로 목봉 훈련에 들어갔을 정도니까. 그런 이 중사가 직접 명찰을 달아준 수여식의 감동은 남달랐다.


수여식 당일, “넌 고생 좀 더 해야 하는데” 라면서도 대견해하던 이 중사를 오 이병은 가장 닮고 싶은 군인상으로 꼽는다. 이쯤해서 그에게 빨간 명찰을 단 소감을 물었다.

“빨간 명찰을 다는 순간의 느낌은, 직접 해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를 겁니다.”

아직도 수여식의 감동이 느껴지는 듯, 그는 명찰을 소중히 어루만졌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명찰의 진홍색은 피와 정열? 그리고 약동하는 젊음을 조국에 바친 해병대의 전통을 상징한다. 이름을 새기는 황색은 땀과 인내의 결정체임을 의미한다. 오 이병이 빨간 명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이 때문이다.  



나이를 잊고 여유를 배우다

해병대는 평균 연령이 타군보다 낮은 편이다. 오 이병의 선임들은 대부분 그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리다. 그러나 병영에는 나이를 잊게 만드는 또 다른 사회가 있었다. 해병대는 그에게 나이를 떠나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군 생활에 적응이 빠른 것 같다는 말에 오 이병이 멋쩍게 웃었다. 그런 그에게도 사회생활을 잠시 접어두어야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사회에서 그는 쥐고 있는 끈이 많았다. 클릭비, 뮤지컬, 운영하던 온라인 쇼핑몰까지. 그는 입대 이틀 전까지도 초조한 마음으로 주변 정리에 매진했다. 그런데 막상 입대일이 되자 초조함은 초연함으로 변했다.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정리를 했는데, 돌이켜보면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회에 나가면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유를 갖게 된 데는 자대의 밝은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이등병도 의견을 내놓을 수 있어 ‘말을 할 수 있는 실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사진촬영을 할 때도 구경 온 선임들과 쉬는 시간마다 <HIM>을 들여다보며 웃음꽃을 피우던 오 이병의 모습이 스쳐갔다.




고된 생활을 이겨내는 힘

인터뷰 내내 강인한 해병 그 자체였던 오 이병도 여느 이등병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물었을 때다. 훈련병 때는 단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동기가 감춰둔 과자를 몰래 훔쳐먹기도 했다는 오 이병. 지금은 초콜릿류와 삼겹살이 가장 먹고 싶단다. TV에서 기름이 지글지글한 삼겹살을 보면 고기 냄새가 솔솔 나는 것 같다고.
음식도 음식이지만, 군인의 힘은 편지에서 온다.  오 이병은 훈련병 시절부터 이런저런 사회 소식이 적힌 팬들의 편지를 많이 받아서 부대 내 소식통으로 통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클릭비 멤버인 김상혁 이병의 소식을 담은 편지다.

“주말에 훈련받고 돌아왔는데 ‘상혁(육군) 오빠는 토요일이라 쉰다는데 오빠도 쉬고 있겠네요’하는 편지를 보면 괜히 상혁이가 부럽고 미워졌습니다. 허리를 다쳐 조건미달만 안 됐어도 같이 데리고 오는 건데….”

친구가 얄미워질만큼 힘든 훈련을 마친 오 이병의 군악대 정복에는 ‘특등사수’가 선명하게 새겨진 휘장이 달려 있다. 해병대 1140기인 오 이병은 신병훈련소 수료식에서 특등사수로 상장을 받았다. 특등사수 상은 신병훈련기간 내 사격훈련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신병에게 주어지는 것. 특등사수에게는 교육훈련단장으로부터 특등사수 상과 전투복에 부착할 수 있는 휘장 등이 수여된다.

끝으로 클릭비의 데뷔 12주년을 맞아 팬들을 위한 한 마디를 부탁했다. 오 이병은 얼마 전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었다며 짧은 말을 전했다.

“사고뭉치라서 미안합니다.”

추측컨대 오 이병이 급하게 입대하느라 팬들에게 다소 서운한 일을 저질렀나 보다.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와 브라운관을 지배했던 이 남자. 이제 머지않아 해병대의 꽃인 수색대원이 되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 생각하니 매력 그 자체다.




해병대사령부 군악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창설…평화를 향한 60년의 울림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맞는 해병대 군악대는 해병대사령부 군악대, 제1사단 군악대, 제2사단 군악대로 이루어져 있다. 해병대 군악대는 해병대가 창설된 지 2년 뒤인 1951년 9월 30일 초대 군악대장인 이관승 병조장(현재의 상사 또는 원사) 아래 군악요원 25명으로 출발했다. 군악대 최초로 고적대를 만들고, 의장대시범을 시연하는 등 우리나라 군악대 발전의 초석을 깔았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한 전공자로 구성된 해병대 군악대는 매년 열리는 정기연주회와 더불어 도서부대 장병을 위한 위문공연, 각종 행사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해병대가’ ‘상륙전의 노래’ ‘해병대 행진곡’ 등 해병대 특유의 힘찬 행진곡으로 해병대원들의 사기를 북돋는 데 이바지한다. 언제나 행진곡으로 시작을 알리는 정기연주회에서는 악기 연주뿐 아니라 다양한 퍼포먼스, 성악과의 합연을 선보인다.
오종혁 이병이 행사를 위해 파견 근무중인 해병대사령부 군악대는 군악대장 허태진 중위가 50여명의 대원을 이끌고 있다. 오는 9월 30일「해병대 군악대 60년사」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