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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화제의 병사] 병영문학상 수상, 공군 제19전투비행단 서재석 상병

[화제의 병사] 병영문학상 수상, 공군 제19전투비행단 서재석 상병

 

 

 

 

 

“이병 초심 새기기 위해 글쓰기 시작”

 

지난해 말 대미를 장식한 제10회 병영문학상은 무려 1만4천여 편의 응모작이 쇄도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시와 수필, 단편소설 부문의 응모작들은 치열한 경합 끝에 각 부문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영예의 주인공들 가운데 수필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공군 서재석 상병을 19전투비행단에서 만났다.

 

글/ 유희종 기자 사진/ 권윤성(A&A스튜디오 포토그래퍼)

 

 

 

 

 

나를 사람이게 하는 가치 ‘가족’

 

인터뷰에 응한 서재석 상병은 짙푸른 공군 정복 차림이었다. 상병캠프에 참가하고 있어서라고 했다. 수상자가 발표될 당시만 해도 일병이었는데, 그사이 어느덧 상병 3주차에 접어들었다. 차분한 목소리와 가늘고 긴 손가락이 그의 수필과 잘 어울렸다.

 

서 상병이 병영문학상에 응모한 수필은 두 편이다. 두 편 모두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어머니의 투박한 손에서 느껴진 애틋함을 그린 <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손>이 수상의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다른 한 편인 <젊은이가 무심코 지나칠 것에서 철학을 쌓는 방법>은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보며 깨달은 희생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고백한 작품. 살가운 말 한 번 다정하게 건네지 못했던 막내아들의 진심어린 글에 수필의 주인공이신 부모님은 무어라 말씀하셨을까.

 

“개인적으로 보면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서 두 분 다 제 글을 두고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주위 분들에게 어찌나 자랑을 하셨는지, 제가 글을 쓰는 줄도 몰랐던 친구들까지 얼결에 수상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자랑스러운 아들’ 서 상병의 얼굴에 쑥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입대 전까지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걱정이 깊었던 그다. 지금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어머니의 건강을 기도한다고 하니 어느 모로 보나 효자임이 분명한 것 같은데, 그래도 어머니께 더 잘 해드리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입시의 부담감으로 인해 반항기를 겪었던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돌이켜 보면 가장 후회되는 시기.

 

하지만 서 상병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다. 생각이 많은 편이어서, 스스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마다 글을 쓰곤 했던 것. 그저 순간의 상념으로 스쳐 보내기 아까운 생각들을 간직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수능시험 과목 중에 언어영역을 제일 싫어했고 책을 읽으면 금방 잠이 쏟아졌지만 글을 쓰는 일만큼은 즐거웠다. 덕분에 이번 수상의 영예와 함께 부모님께도 말로 못다 표현한 마음을 전할 수 있었으니 마냥 아쉽기만 한 시기는 아니었으리라.

 

군 생활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깊이 느끼게 됐다는 서 상병. 가족들에게 “자주 만나기는 어렵지만 항상 행복했던 때를 잊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고 싶다”는 따뜻한 바람을 전했다.

 

 

 

 

 

군 생활은 긍정적인 변화의 연속

 

서 상병은 이제 군 생활을 꼭 1년 남겨두고 있었다. 갓 단 세 줄짜리 계급장이 미처 익숙해지지 않아 “아직도 일병인 것만 같다”고 말하는 그에게, 지금까지의 군 생활은 모험처럼 다가왔다.

 

2녀 1남, 두 명의 누나 아래에서 막내로 자란 서 상병이기에 남자들끼리 생활하는 군대는 생소하고 어려운 곳이었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잘못을 타이르거나 함께 고쳐나가는 방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후임일 때야 선임의 지시만 따르면 됐지만 직접 선임이 되자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고. 그래도 상병이 된 지금은 많이 익숙해지고 친해진 덕분에, 사회에 나가면 연락하고 지낼 형, 동생이 여럿 생겨서 기쁘다고 했다.

 

군 생활을 통해 사람을 얻기도 했지만 스스로 겪은 변화도 컸다. 크게 두 가지를 꼽자면 유연성과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 대학생 시절엔 윗사람의 이야기라도 수긍하기 힘들면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상명하복이 중시되는 군대라는 계급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니 스스로도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지적을 받으면 먼저 ‘왜 그런 말을 하셨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뒤에 저 자신을 돌아보고 순응하게 되죠. 이런 점은 훗날 사회생활을 할 때도 제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범위가 넓어진 만큼 행동에도 무게감이 더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철없이 행동할 때가 많았지만,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확신이 생기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침착함을 군대에서 배웠다. 실수가 줄어들면서 자신감도 커졌다.

 

군 생활이 서 상병에게 남긴 긍정적인 변화는 그의 글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서 상병은 군대에서 쓴 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초심>이라는 수필을 꼽았다. 제목에서부터 건전함을 풍기는 <초심>은 서 상병이 막 일병이 되었을 무렵에 이등병 시절의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쓴 글이다.

 

“군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이병 때의 다짐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꾸 쓰고 되뇌지 않으면 금방 초심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글을 쓰게 됐죠.”

 

글로 남길 정도로 잃고 싶지 않았던 서 상병의 초심은 무엇이었을까. 또 한 번의 진급을 경험한 그는 지금, 그 초심을 붙잡는 데 성공했을까.

 

서 상병이 지키고 싶었던 초심은 그리 거창한 다짐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후임에게 벌컥 화를 내지 않고 말로 잘 타이르겠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겠다’처럼 일상적인 일들이었다. 하지만 사소한 것일수록 늘 잊지 않고 실천하기엔 만만찮은 법이기에, “아직까지는 잘 지켜왔다”고 말하는 서 상병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서 스스로에 대한 긍지가 느껴졌다.

 

 

 

군 생활의 절반을 넘긴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줄 수 있을 만큼 자신을 갈고 닦아 온 서 상병.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상병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남은 1년의 군 생활을 어떻게 꾸려가고 싶은지 묻자, 배움의 기회로 삼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회에 있을 때 학업에 치여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는데, 군대에서의 여가시간을 알차게 꾸려 하나씩 이뤄보고 싶다고.

 

“글을 쓰긴 하지만 정작 책을 읽는 것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책을 펴면 잠이 들기 일쑤였거든요. 남은 시간 동안 책도 많이 읽고, 악기, 특히 통기타를 배워보고 싶네요.”

 

여느 이십대와 마찬가지로 품고 있는 소박한 바람들. 지난 군 생활 동안 초심을 굳게 지켜온 서 상병이기에 남은 1년의 기간 역시 충분한 성장의 시기가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