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6 곰신데이트] 육군 제6사단 5769부대 전준재 일병 & 정희재 양
“많이 웃던, 그 천 일 동안”
하나를 그어도 세상에 같은 선이 없듯, 사랑도 같은 사랑은 없다. 동갑내기 두 남녀가 만나 굴곡 많은 선을 이어 오랜 시간을 함께해오고 있다. 인터뷰 전날 1,000일을 맞았다는 이들의 표정은 담담하지만, 깊이가 느껴졌다. 요란한 인사도, 과장된 몸짓도 없었다. 그 흔한 도시락도 없었지만,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둘은 조용히 웃어 보였다.
글/ 김희윤 기자
사진/ 권윤성 포토그래퍼
메신저가 씌워준 콩깍지
육군 제6사단 5769부대의 전준재 일병과 곰신 정희재 양의 첫 만남은 독특했다. 짓궂은 친구가 전 일병과 메신저 대화 중에 옆에 진짜 예쁜 친구가 있다고 말한 것을 발단으로, 친구를 끈질기게 졸라 희재 양의 번호를 알아낸 전 일병이 2주가량 ‘만나고 싶다’, ‘사랑 합니다’라고 장난치듯 메시지를 보내며 미묘한 감정이 싹텄다고. 희재 양과의 첫 만남을 묻자 전 일병은 장난스럽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만, 표정을 보니 거짓말이 틀림없다. 그 후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어졌고, 집이 각각 온양과 평택에 떨어져 있었지만, 일주일에 4~5일은 만날 만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해왔다.
유쾌한 첫 만남 못지않게 입대 전 사건사고(?)도 화려하다. 평소 음악에 관심 많던 전 일병이 데이트도 제쳐놓고 몰두했던 일이 있었으니 바로 ‘슈퍼스타K3.’ 지역 예선에 합격하고 나선 노래 삼매경에 빠져 희재 양이 직접 모니터링도 해주고 선곡도 함께 준비했다. 결연한 마음으로 참가했던 서울 2차 예선에서 전 일병이 우울한 발라드를 고집한 탓에 안타깝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때마침 인터뷰를 진행한 고석정에 슈스케 3 우승팀인 울랄라세션의 신곡이 흘러나왔고, 전 일병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한 번 더 출전할 생각이 없느냐 물으니 손사래를 치는 그를 보며 희재 양은 실력보단 외모 때문에 떨어진 것 같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1,000일이란 시간을 함께하며 가장 오래 떨어져 있던 기간이 일주일이었고 그 순간마저도 죽을 듯이 힘들었다고 하니 길고 긴 군 생활은 어찌 기다릴까 궁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전 일병은 희재 양이 보고 싶을 때마다 틈틈이 전화를 걸어 하루에 2~3번은 꼭 목소리를 듣는다고. 막상 희재 양은 “준재가 의무감에 전화하는 건 아닐까 싶어 부담가지지 말고 일부러 전화하지 말라고 해요.”라고 말하지만 어쩌다 올지 모를 전화에 학교에서도 일하면서도 핸드폰을 놓지 않고 꼭 손에 쥐고 있다 하니 새침데기가 따로 없다.
면회가 안 되는 GP 부대로 남자친구를 보낸 마음이 어땠냐? 물으니 희재 양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뿐이었다"고 답했다. 고교 시절 하키선수로 활약했던 전 일병은 힘든 운동과 위계질서 탓에 몸과 마음이 지쳐 돌연 하키를 접고 방황했었다고. 그런 남자친구가 군대라는 조직에 잘 융화되어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노심초사했다는 그녀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전 일병은 선임에게 사랑받고 후임과도 잘 어울리는 멋진 군인이 되어있었다.
속 깊고 마음 따뜻한 ‘나쁜 남자’
즉흥적이며 저돌적 성격의 소유자인 전 일병은 여태 여자친구에게 특별한 이벤트 한번 못 해준 것이 못내 아쉬운 듯 말을 아꼈지만, 희재 양은 커플링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고백했다. 아르바이트 중인 희재 양의 가게에 갑자기 찾아와 끝날 때까지 기다린 전 일병이 그녀의 손을 잡고 향한 곳은 주얼리숍. 월급을 받자마자 기쁜 마음에 달려와 여자친구와 커플링을 맞추는 그의 마음씨에 기자가 감동하려던 찰나, 그녀의 손을 슬쩍 살폈는데 반지가 없다. 두고 왔느냐 물으니 희재 양이 웃기만 한다. 커플링 맞추고 반년이 조금 지났을 때 전 일병에게 입영통지서가 왔고, 그때 전 일병이 설득했단다.
“우리 입대 전에 좋은 추억 만들고 하려면 돈도 많이 필요한데, 우리 이거 팔고 데이트하자. 제대하면 1돈짜리 금반지 해줄게.”
이런 간절한 설득에 희재 양은 선뜻 반지를 내주었고, 둘은 커플링 대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그런데 입대를 얼마 안 남긴 어느 날, 전 일병이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병원에 가보니 맹장이 터져 전 일병의 입대가 연기됐다. 허전한 두 손을 내보이는 희재 양과 멋쩍어하는 전 일병을 보며 1돈 금반지 아쉽지 않을 둘만의 추억에 부러운 마음이 앞섰다.
1,000일 동안 이벤트는 단 한 번, 그것도 희재 양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 당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전 일병을 놀래 켜 주려고 희재 양이 모처에 촛불로 메시지를 만든 뒤 태연하게 주문전화를 넣었다고. 영문도 모르고 배달하러 온 전 일병은 희재 양이 꾸며놓은 촛불을 보며 가슴이 찡했다고 했다.
"처음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땐 기념일도 안 챙기는 무심함에 야속한 마음뿐이었는데 1년 조금 지났을 때부턴 그저 매일매일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의젓하게 답하는 희재 양의 한마디에 1,000일을 함께한 연륜이 묻어난다. 매일같이 얼굴 맞대고 지낸 그녀를 4개월에 한번 만나야 하는 게 힘들다고 털어놓는 전 일병은 “가게에 핸드폰 두고 나온 느낌이에요. 없으니까 허전하고, 누가 가져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라며 말끝을 흐렸고, 희재 양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애교 섞인 투정을 부린다.
매일매일 생각나지만, 아플 때 특히 서로가 간절하다는 이들은 연신 “아프지 말고 남은 15개월 잘 보내자”고 다짐했다. 켜켜이 쌓인 1,000일의 시간만큼이나 앞으로의 1,000일 또 그 다음의 1,000일이 소중하기에, 잠깐의 기다림도 웃음으로 이겨내는 두 사람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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