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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2012.01 곰신데이트] 육군 제12사단 7623부대 이찬호 일병 & 이미지 양

[2012.01 곰신데이트] 육군 제12사단 7623부대 이찬호 일병 & 이미지 양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네 곁을 지킬게”

 

육군 제12사단 7623부대 이찬호 일병 & 이미지 양

 

 

산자락에 듬성듬성 쌓인 하얀 눈이 겨울을 실감케 하는 영하의 날씨가 찾아온 강원도 인제. 꼭 잡은 손으로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는 이찬호 일병과 곰신 이미지 양의 다정한 모습에 추위도 한풀 꺾이는 듯 했다. 늘 서로를 생각하는 동갑내기 커플의 알콩달콩한 데이트 현장!

 

글/ 유희종 기자 사진/ 권윤성 A&A스튜디오 포토그래퍼

 

 

 

 

편안함이 떨림으로 변한 순간

 

짝사랑의 고단함에 아파할 때마다 늘 곁을 지키며 위로해주던 편한 친구가 어느 날 덜컥 고백을 해온다면? 이찬호 일병과 이미지 양, 두 사람 사이의 떨림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대학에서의 설레는 첫 학기, 이 일병은 미지 양에게 조심스런 고백을 건넸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그로부터 4~5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두 사람의 진짜 연애가 시작됐으니까. 그 동안 이 일병은 고향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미지 양이 아플 때면 찾아가 간호까지 해주며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지난해 9월. 같은 과 CC다 보니 한시도 떨어질 틈 없이 강의도 공부도 동아리 활동도 늘 함께였던 두 사람은 이제 부대에서도 다정한 커플로 유명하다.

 

“친구로 시작한 사이라서 함께 있으면 편안해요. 애인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느낌에 오래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이 일병을 만나러 가는 길에 고백 아닌 고백을 들려준 미지 양은 자신감 있고 당찬 모습이었다. 인터뷰 내내 커플의 지난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던 미지 양과 다소 쑥스러워 하며 말을 아끼던 이 일병은 달라도 너무 달라 친구들도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지만, 그래서 오히려 잘 어울리는 한 쌍을 이룬다. 이 일병이 처음 미지 양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자신과는 다른 매력 때문.

 

“미지는 처음 봤을 때부터 참 밝은 아이였어요. 할 건 다 하면서 놀 땐 잘 노는 모습도 멋있었고요. 댄스 동아리와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학점은 정말 좋았거든요.”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는 이 일병, 그럴 만도 하다. 평소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미지 양은 이따금 남자친구를 위한 이벤트로 걸그룹의 춤을 연습해 이 일병만을 위한 작은 공연을 펼친다. 내 여자친구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에 맞춰 나만을 위해 춤추는 모습, 상상만 해도 행복해지는 남자의 로망 아니던가!

 

“연습은 많이 했는데 너무 떨리고 창피해서 웃기도 하고, 제대로 끝까지 춰주지 못해서 아쉽다”는 미지 양이지만, “남자친구에게서 ‘처음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처럼 반할 것 같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행복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모범생’ 곰신의 ‘군바라지’ 이야기

 

서로가 있어 행복하고 더 잘 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는 착한 커플의 애정행각은 이 일병의 입대 후에도 이어졌다. 논산 훈련소에서 입소한 이 일병을 배웅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미지 양은 이제 ‘군바라지’에 정성을 쏟고 있다. 훈련소 시절에는 ‘폭탄편지(훈련소 입소 직후, 주소를 알 수 있는 첫 편지가 오기 전까지 미리 써두었던 편지를 모아 보내는 것으로 그 양이 많으면 수십 통에 이른다)’를 보냈고, 자대로 옮겨간 후에는 택배로 애정을 과시했다. 가장 정성들여 보낸 물건은 겨울철에 훈련을 앞두고 과자와 핫팩, 털 깔창 등을 꼼꼼하게 챙겨 보낸 것. 훈련을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온 이 일병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택배를 받았다.

 

“평소 같으면 생활관으로 가져다주는 소포를 직접 가지러 오라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가봤죠. 그랬더니 15kg이나 되는 박스 2개가 놓여 있는 겁니다. 저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서 챙겨 보내기까지 했더라고요. 훈련 받고 돌아온 뒤라 지쳐있었는데 정말 기뻤습니다.”

 

‘꼬맹이’ 여자친구가 자신이 들기에도 무거운 소포를 보내줬다는 감동이 다시금 이 일병을 스쳐가는 듯했다.

 

이날 촬영은 인제에서 이뤄졌지만 이 일병이 복무하는 7623부대는 그보다 더 깊은 산 속에 숨어 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작은 면회소가 있지만 운영은 하지 않는 상황. 때문에 두 사람이 휴가나 외박 때만 만날 수 있다는데, 이 일병이 휴가를 나가는 달이면 미지 양은 일찌감치 ‘작업’에 들어간다. 1분 1초가 아까운 둘만의 시간이기에 함께 갈 만한 곳을 정해 볼거리, 맛집, 코스와 비용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프린트하는, 그야말로 모범생다운 여행계획을 세우는 것. 이 일병은 “5분 만에 기차를 갈아타려고 뛰어다닌 적도 있다”고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미지 덕분에 휴가는 늘 허비하는 시간 없이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고 여자친구 자랑에 바빴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또 누나처럼 이 일병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챙겨주는 모습에 이 일병의 부모님도 미지 양을 딸처럼 예뻐하신다. 집에 놀러갈 때면 이 일병의 어머니가 미지 양의 집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시간이 늦었으니 재우고 보내겠다”고 허락을 받아주실 정도라고.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 일병의 면회 등을 계기로 자주 만나면서 이 일병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는 미지 양이 케이크에 초를 꽂아 이벤트를 열어드렸을 만큼 다정한 사이가 됐다. 그런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이 일병의 입가에 늘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도 이쯤 되면 당연한 일이 아닐지.

 

 

 

 

“더 멋진 사람이 되어 돌아올게”

 

이렇게 알콩달콩한 사랑을 키워가는 두 사람에게 잠시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미지 양이 어학연수를 위해 호주로 출국할 날을 앞두고 있는 것.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 예상하고 있다는 연수가 끝날 즈음이면 이 일병도 군 복무를 마치고 예비역으로 사회에 복귀한다. 그때가 되면 예전처럼 함께 손을 잡고 교정을 거닐게 되지만, 그때까지의 기다림이 주는 아쉬움이 크다.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매일 전화통화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봤었는데, 제가 호주로 떠나고 나면 만나기는커녕 전화도 하기 어려워지잖아요. 서울에서 곰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더 그리울 텐데 걱정이에요.”

 

잠시 얼굴에 수심이 스쳐갔지만, 이내 미지 양은 밝은 목소리로 “그래도 편지를 자주 하게 될 테니 좋다”고 했다. 자주 통화를 하게 되더라도 편지는 꼭 많이 써주고 싶었는데, 막상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니 쉽게 펜을 들게 되지 않더라는 것. 평소 이 일병이 속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편지를 쓰면 말로 할 때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아쉬움이 조금은 덜어진다고.

 

여자친구를 잠시 먼 나라로 떠나보내는 이 일병의 심정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행군할 때나 훈련할 때, 여자친구 이름을 부르며 힘든 것도 이겨내곤 했습니다. 거의 한 달 주기로 만날 수 있으니 ‘미지를 보려면 며칠이 남았구나’ 하고 날짜를 세기도 했죠. 그 마음으로, 이제는 제가 여자친구를 기다리려고 합니다.”

 

사랑스런 연인이자 믿음직한 친구로 함께 하는 이 일병과 미지 양의 새해는 결국 애틋한 기다림으로 채워질 예정. 하지만 올해 말이면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재회할 22살의 두 연인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