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2012. 04 곰신데이트] 육군 제32사단 505여단 윤유철 일병 & 최송은 양

[2012. 04 곰신데이트] 육군 제32사단 505여단 윤유철 일병 & 최송은 양

 

 

 

“You complete me”

 

 

화창한 날, 부대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생활관에서 정문까지 좀 걸려요.” 담담한 듯 말해 놓고도 그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의 말수는 점점 줄어 갔다. 마침내 군복 차림의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초조해보이던 그녀의 얼굴에 비로소 환한 미소가 번졌다.

 

글/ 유희종 기자

사진/ 권윤성 A&A스튜디오 포토그래퍼

 

 

 

 

5년을 하루처럼 사랑해온 커플

 

 

짧은 기다림마저도 애틋한 시간으로 바꿔놓은 커플은 32사단 윤유철 일병과 그의 동갑내기 곰신 최송은 양. 보자마자 다정하게 서로를 안아준 두 사람은 카메라를 대동한 만남이 어색한지 연신 멋쩍게 웃으면서도 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만남을 이어왔으니, 이제 햇수로 5년이 넘은 장수 커플! 군대로 치면 ‘말년 병장’쯤 됐을 그들의 ‘닭살포스’가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역시나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일병이 돼 6개월 만에 나온 첫 휴가 때는 유철이가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놀지도 못했어요. 물론 부대에서 끙끙 앓는 것보다야 휴가를 나왔을 때 아픈 편이 간호를 해줄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아쉬웠죠. 그런데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공개 데이트를 할 수 있다니 신기하고 좋아요.”

 

휴가는 앓다가 흘러갔고 그 뒤로 면회만 몇 번 다녀갔으니, 아쉬움이 남는 게 당연했다. 입대 전 오랜 시간을 늘 함께였으니 더더욱.

 

 

사실 이들의 인연은 남다르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회장과 회계로 활동하던 두 사람은 일 때문에 가까워져 연인이 됐다. 그러다가 졸업 후 우여곡절 끝에 세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입학을 앞두었을 때 다시금 캠퍼스 커플이 됐다. 일부러 같은 학교에 원서를 넣은 것도 아니었으니, 운명처럼 서로가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긴 게 아닐까.

 

찰떡같은 인연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제 ‘당연히 항상 붙어 다니는 커플’이 된 두 사람은 윤 일병이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가장 어렵고 긴 헤어짐을 맛보고 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훈련소 시절, 전화도 편지도 할 수 없던 첫 2주를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꼽는다. 무더운 여름의 한복판인 7월 4일. 훈련소에 입소하던 윤 일병이나 배웅을 갔던 송은 양이나 씩씩하게 헤어져 돌아섰다. 하지만 갈 때와 달리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윤 일병이 정성껏 써내려간 편지를 읽던 송은 양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서로가 곁에 없다는 것이 실감나는 첫 순간이었다.

 

쌓여만 가던 그리움은 기나긴 편지가 되었다. 윤 일병의 훈련병 시절 송은 양이 보낸 편지는 100여 통. 매번 서너 장의 편지를 써 보냈으니, 300장이 넘는 구구절절한 편지가 두 사람을 단단히 이어주는 다리가 된 셈이다.

 

 

 

 

 

 

평범한 일상이 사랑으로 색을 입다

 

 

그동안의 그리움을 풀어내는 특별한 데이트! 동물원과 놀이공원, 공원을 넘나드는 데이트 코스에도 두 사람은 좀처럼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손은 시종일관 꼭 붙잡은 채, 촬영 틈틈이 밀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누곤 했다. ‘두 분, 뽀뽀해주세요~’하는 다소 짓궂은 주문에도 망설임 없이 입 맞추는 5년차 커플의 관록(?)이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채비를 했다. 그림자가 길어진 공원을 걸으며 즐거웠던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스물 셋의 나이, 20대의 단 한 순간도 함께이지 않았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은 서로를 어떤 모습으로 추억하고 있을까.

 

“제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에요. 제 인생에서 4분의 1을 함께 했으니까, 이제 없다는 건 상상이 안 되죠. 송은이가 없었다면 전 아마 꽤나 멋없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겁니다.”

 

윤 일병, 그가 말하는 송은 양의 의미다. 같은 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과가 달라 수업이 끝난 후에 만나고, 대신 왕복 3시간 가까이 걸리는 통학시간을 틈타 데이트를 하는 평범한 생활. 그 평범함을 멋지고 재미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준 것이 바로 송은 양이라고.

 

 

윤 일병의 입대 때문에 두 사람이 학교에 같이 다닌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전역 후에는 같이 학교를 다니며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꿈을 꾼다. 함께 기다려주는 송은 양이 있기에, 그 기다림이 안타깝기에 더 간절히 그려보는 미래다.

 

아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보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자신만 사라져 있는 현실이 힘들 거라며 송은 양의 마음을 헤아리는 속 깊은 윤 일병은 여자친구에 대한 미안함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학교 친구들은 이미 복학한 남자친구와 마음껏 놀러 다니는데, 송은이는 저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니 늘 안타깝고 미안해요.”

 

그 순간, 송은 양이 그동안 참아온 눈물을 보였다. 자유롭게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마음대로 걸지 못하는 슬픔과 함께 송은 양의 마음을 스쳐간 것은 서운함이 아니었다. 이미 전역이 가까웠거나 예비역인 친구들과 달리 앞으로도 긴 군 생활을 남겨둔 윤 일병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사귄 지 일주일 만에 커플링을 맞추고 같은 반지를 낀다는 것의 의미를 새겼던 커플은 단 한 차례의 싸움도 없이,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끼고 있는 그 커플링처럼 처음 그대로의 사랑을 지켜가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것, 그리고 서로에게 끝없이 ‘고맙다’ 말하며 맞잡던 손. 그것이 지금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