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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파워인터뷰] 한국퀄컴 차영구 사장 ‘한미동맹’ 전문가에서 ‘한미IT동맹’ CEO로 변신



 ‘영어와 IT 달인이 유비쿼스 시대의 경쟁력’
글로벌 IT기업인 퀄컴의 한국법인 CEO인 차영구 사장은 다가 올 유비쿼터스 시대를 위해 영어와 IT기기의 달인이 되라고 말했다. 40여 년 째, 매일 새벽 태권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준비하고, 차안에서도 거리에서도 테이프로 영어를 독학해 미국 회사의 CEO가 된 차 사장은 ‘준비된 자’가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미동맹의 전문가에서 ‘한미IT동맹’의 가교 역할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차 사장이 들려주는 미래세상과 미래를 위한 준비.

대담 / 민승현 편집인
정리 / 홍민석 편집위원
사진 / 임재문(A&A스튜디오 포토디렉터)


글로벌 IT기업인 퀄컴의 한국법인 CEO인 차영구 사장은 안타까운 심정부터 털어 놓았다. 해병대에서 발생한 있을 수없는 사고에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육사 26기로 1970년 임관, 2004년 국방부 정책실장을 마지막으로 중장으로 예편한 그에게 군은 절반의 인생에 해당한다. 
“병사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젊은 청춘들이 희생된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더욱이 같은 전우에게 희생이 되었다니….”


‘큰그릇’으로 변화하려면 담금질이 필요
차 사장은 군 복무는 ‘나 만의 세계’에서 ‘큰 세상’을 경험하는 자기 수련이 기간이라고 정의한다. 개인생활에서 단체생활로 바뀌는 등 입대전과 비교해 대변화가 이루어지는데, 변화된 생활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군 복무를 통해 자기 수련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에 대해 차 사장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왜 군 복무를 해야 하는가, 군 복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자문자답과 자기성찰을 통한 자기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기정립을 거쳐 군 복무를 하게 되면 맡은바 임무는 물론이고, 거리낌 없는 스킨십을 통해 전우애도 깊어지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자각이 없이 군 복무에 임하면 고달프고 고통스러우며, 구속되어 있다는 불평이 쌓여, 병영생활에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다.
차 사장은 군 생활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튀밥처럼 거듭나는 ‘폭발적인 변신’의 시간이라며, 스스로 자신을 단련하는 담금질을 통해야만 인간은 누구나 비로소 ‘큰그릇’이 된다고 강조했다. 작은 알갱이가 뜨거운 철제 항아리에서 달구어져 몇 배 커지는 튀밥을 중국어로는 쌀은 폭미화(爆米花), 옥수수는 옥미화(玉米花)라고 한다. 몸집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꽃처럼 아름다워 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차 사장은 군 생활의 힘겨움과 아픔을 견뎌내야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세계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는 아프리카 땅이든 언어의 장벽이 높은 유럽이든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군 복무를 앞으로 삶의 훈련과정이라고 여기고 달갑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계로 대양(大洋)으로 우주로 나아가는 힘이 군 경험에서 나온다는 뜻.
누구보다 군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갖고 있는 차 사장은 “요즘 병사들은 불합리와 부당함을 가장 힘들어 하는 것 같다”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사컨설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화를 통해 감정의 기복을 바로 잡아주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억울함을 느낄 때, 이를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추스르고 안정을 되찾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차 사장은 병영문화 개선과 병사관리에 보다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첨단 무기를 기반으로 하는 군사력 증강을 군사외교의 강화로 해결해 나간다면, 예산과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운명’을 만든다.
국방부 정책실장 시절 용산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수년 동안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외교안보 전문가인 차 사장이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의 CEO로 선임된 것은 ‘운명’이었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일면식도 없는 제이콥스 회장이 찾아와 한국법인을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평생 한미동맹과 미국정부로부터 국익을 지키기 위해 고민해왔는데, 미국기업의 한국법인 대표가 되어 그들의 이익을 지켜달라는 얘기로 들려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퀄컴이 한국기업과 한 일을 살펴보니, 퀄컴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기술이 결합해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서 우리기업들이 마켓을 창출하고 이를 확장해 가는 단계에 있더군요. 한국과 미국의 기술동맹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차 사장은 ‘한미동맹’ 전문가에서 ‘한미IT동맹’이 가교 역할을 하는 CEO로 변신한 것을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기실 그는 철저한 ‘준비론자’다. 육시 생도시절부터 40여 년 째, 매일 아침 태권도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새벽 6시 무렵 태권도 자세로 명상에 잠겨 하루를 준비하는 차 사장은 “60대라도 아침 운동이 신체 나이를 40대로, 심리적 나이는 30대로 만들어준다”며 “젊은 엔지니어들과 어울리며 아이디어를 내놓는 힘”이라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영어로도 알 수 있다.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에서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차 사장은 미국에서 지낸 기간이 1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차 안에서도, 길에서도 영어 테이프를 놓지 않고 공부해 미국 회사의 CEO가 되었다.
차 사장은 요즘은 IT 공부에 푹 빠졌다. 사무실 한쪽 벽 칠판에는 일반인은 알아보기 어려운 전문용어로 가득하다. 한국퀄컴의 CEO가 된 이후 전문가들로부터 개인교습을 받아가며 IT의 세계를 섭렵한 차 사장은 ‘IT분야 석사급’이 되었다고 자평한다. 2년 만에 IT 전문가가 된 것 또한 차 사장이 얼마나 노력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차 사장은 예편 이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 한미협회 사무총장, 팬택 상임고문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이렇듯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미래에 대비한 차 사장이지만 한국퀄컴 CEO로 취임할 당시의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엄청난 금액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퀄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었다. 이른바 ‘로열티와 엄청난 이익만 챙겨가는 회사’로 알려진 것이다.


퀄컴의 첨단기술력을 한국 IT커뮤니티와 연결시켜
차 사장은 먼저 퀄컴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사실 퀄컴과 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사이다. 퀄컴이 개발한 CDMA 기술을 가장 먼저 상용화한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또한 퀄컴의 칩을 만드는 모든 공정 가운데 절반가량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통해 한국에서 이뤄진다. 한국 공장에서 수천 명이 퀄컴의 칩을 만들고, 매년 1조 이상이 한국에 투자된다. 미국 기업이지만 한국 기업 못지않게 일자리를 만들고 투자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단말기제조사는 물론이고 KT, SK텔레콤, LG U+ 등 통신사업자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차 사장은 부임과 동시에 한국에 다가가고, 투자하고, 주는 기업, 궁극적으로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세워야 한다고 본사를 설득했다.
“퀄컴이 가진 큰 재산은 기술이며, 한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최첨단 기술입니다. 더불어 한국은 기술을 상용화하는 능력이 뛰어나죠. 이 둘을 묶으면 서로 윈-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2월 설립된 한국 R&D센터는 퀄컴 본사의 기술력을 한국에 연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국내 연구소, 정부기관, 대학, 기업, 지방자치단체들과 IT관련 협력을 강화시키는 ‘기술결합’의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차 사장은 “연간 20억 달러에 달하는 연구개발 비용과 8,000여명의 전문 인력 등 퀄컴의 최첨단 기술력을 한국 IT커뮤니티와 연결한 점이 가장 보람스러웠다”고 말한다.
한국 R&D센터는 우리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멀티미디어소프트웨어와 신규 애플리케이션 분야를 중심으로 Look&Listen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다. 카메라를 메뉴판에 등 글씨에 대면 한글 내용이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는 Look과 휴대폰이 소리를 들으면 소리의 주인을 식별해내는 Listen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R&D센터에 이은 차 사장의 역작은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지난해 1호인 펄서스테크놀로지에 40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밖에도 퀄컴의 글로벌 벤처 투자경진대회인 ‘큐프라이즈(Q Prize)’를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어 벤처업체 키위플을 1위로 선정해 상금을 수여했다. 큐프라이즈는 국내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공개경쟁을 실시해 1위를 한 기업이나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런 노력으로 차 사장 취임 당시 언론에 보도되는 퀄컴에 대한 기사의 대부분이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90% 이상이 긍정적인 내용으로 바뀌었다.


휴대폰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미래세상
IT기업 CEO인 차 사장이 보는 미래사회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현재 이동통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지만 미래에는 사람과 기계, 기계와 기계, 기계와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범위가 확장 된다”며 “이를 사물지능통신(Machine to Machine)이라고 하는데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미래에는 칩이 내장된 기계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병원에 가지 않고도 의사의 진찰을 받고 상담 결과를 알 수 있는 U-Health시대가 열린다. 또한 초고속 무선 네트워크가 전화나 컴퓨터뿐만 아니라 자동차, 비디오카메라를 비롯한 가정의 모든 제품과 연결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퀄컴은 이러한 미래를 ‘만물 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이라고 하는데, 모바일 단말기가 오감을 넘어서는 새로운 감각기관으로서 개인적인 성향과 스케줄, 현재 위치에 따라 다양한 활동과 콘텐츠를 제안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기에 차 사장은 퀄컴의 기술력과 국내기업의 비즈니스 능력을 결속하는 ‘한미IT동맹’이 더욱 굳건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첨단 기술과 제품만 가지고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시장을 창출해야 하고 시장에서 리더십을 확보해야합니다. 그래서 퀄컴이 지닌 기술과 한국기업의 상용화 능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상생(相生)의 길에 저의 인생을 걸었습니다.”
다가 올 유비쿼터스 시대에 병사들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준비할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차 사장은 ‘영어와 IT기기의 달인(達人)’이라고 단언했다. 글로벌 사회, 유비쿼터스 사회의 경쟁력은 영어와 IT기기를 다루는 능력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차 사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리말을 하듯이 영어를 할 수 있고, 첨단 IT기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차영구 사장은 육사 26기 동기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육사 26기는 상당수가 임관과 동시에 월남전 파병과 주한 미 7사단의 철수로 인한 새로운 부대편성에 참여했다. 1968년 발생한 김신조 사건 등으로 남북한 군사 긴장이 높던 시기라 생도시절은 물론이고 임관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183명이 소위로 임관했으며 대령 59명, 준장 20명, 소장 17명, 중장 7명, 대장 3명을 배출했다. 이상희 전 국방장관, 신일순 전 연합사부사령관, 양우천 전2군사령관, 황규식 전 국방차관(본지 발행인), 강광석 전 병무청장 등을 비롯하여 상당수가 중책을 맡아 국방발전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