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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창간 기획 인터뷰] 안철수 KAIST 석좌교수

안철수 KAIST 석좌교수
“지식은 어디론가 사라지지만 삶의 태도는 남는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젊은이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멘토로 손꼽힌다. 또한 교수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우리나라 중소 벤처업계 발전 및 정부 정책을 위한 조력자, 여러 법인의 사외이사로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명사 중 한 명이다. 게다가 연간 2천여 건의 강연 요청, 300여 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그런 안철수 교수가 기꺼이 월간 HIM에 힘을 보태주었다. 그가 병사들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취재/ 유성욱 기자   사진/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교수는 입대하는 당일 새벽까지 컴퓨터 바이러스와 씨름 했다는 사실을 MBC TV‘무릎팍도사’에서 공개해 화제가 된 적 있다. 그 무렵 안 교수에게는 처자까지 딸려 있었다. 새벽까지 백신 개발을 하다가 허겁지겁 입대하는 바람에 군대 간다는 이야기도 입영열차에서 겨우 했다는 것.

그렇다면“군대에서의 조직생활 경험과 열심히 살았던 생활 태도가 현재 회사 경영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안 교수의 군 생활은 어땠을까?

보통 의과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길이 있다. 흔히 인턴 과정을 밟기 전에 공중보건의로 무의촌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전문의를 따고 군의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안 교수는 서울대 의대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치고 기초의학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안 교수가 입대했을 1991년 무렵, 군의관이 되기 전에 석 달 동안 훈련소 생활을 거쳐야 했다. 체력은 아주 약했지만 워낙 적응력이 뛰어난 편이라 훈련소 생활은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유격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것도 잘 이겨냈다고 한다. 50㎞ 행군도 견딜 만했다. 어떤 사람들은 멀쩡하다가도 힘든 훈련 직전이 되면 아프다고 꾀를 부리기도 한다. 행군 때 가지고 갈 짐의 무게도 줄이느라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예를 들어서 휴대용 삽을 짊어지고 가야 되는 경우에는 무거운 삽 자체는 빼서 다른 곳에 감추어놓고 삽자루만 짐에 싸는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겉보기에는 삽을 가지고 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안 교수는 인내력도 시험할 겸 규정을 지켜서 짐을 싸서 갔는데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고.

훈련소 생활을 마친 뒤 안 교수는 해군 군의관이 되어 대위 계급장을 달고 진해로 갔다. 그런데 그 부대에서는 잠수 군의관이 되기 위한 두 달 간의 잠수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훈련에는 수영 및 잠수훈련 전에 한 시간 동안의 PT 체조와 곧바로 이어 실시되는 구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매순간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자


 

 
 안 교수로선 난생 처음 받아보는 체력 단련이었다. 체조를 마친 뒤에 지친 상태에서 구보를 하니까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는 수영을 했는데, 안 교수는 도저히 겁이 나서 물속에 있을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이야 참고 버티어낼 자신이 있었지만, 물이 무서운 것은 의지로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결국 한달 만에 훈련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안 교수는 그때까지 아무리 참을성이 강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끝내 못할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로선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하던 일이었다고.

“진해에서는 일 년 동안 근무하고 서울에 있는 행정부대로 와서 군대생활 나머지 2년을 보냈습니다. 사실 군대 생활 39개월은 나에게도 커다란 공백기였습니다. 내가 배속된 곳에서는 의학연구를 할 수도 없었으며, 컴퓨터 일을 할 여건도 되지 못했으니까요. 그 좋아하는 게임도 제대로 하질 못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는 게임 디스켓을 사 모으면서 군 생활을 게임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시간으로 삼겠다고 별렀는데 결국은 손도 대지 못하고 말았다. 바쁘게 지낼 때엔 그래도 게임을 즐겼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정신을 차렸습니다.”

안 교수는 소설책을 중심으로 다시 책을 손에 쥐었다. 컴퓨터 일도 계속 해나갔다. 군대에 있는 기간에도 컴퓨터 바이러스는 어김없이 출현하고 있었던 것. 그때 그가 살았던 관사 방은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가고 남은 자리에 이부자리 펴면 전혀 여유 공간이 거의 없었지만, 그곳에서 컴퓨터 원고도 쓰고 백신도 만들었던 것.

“복무기간 동안 어떤 이들을 보면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잠만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상황이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군의관으로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 결과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안철수 교수는 최근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공식 발표 이전이기에 자세히 말하기 곤란하지만, 이 말은 할 수가 있다고.

“의사를 그만둘 때 깨달았던 점은, 나에게는 장기적인 계획이 덧없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아버지처럼 의사로 살 줄 알았는데,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니 오히려 의사를 그만 둬야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CEO를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매순간 의미 있고, 보람 있고, 잘하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 합니다. 본인의 경험을 통해 생각하는 군 생활의 의미란?

어떤 환경에 처해있거나 어떤 일을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열심히 산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합니다.

나는 군 생활을 하며 일단 맡은 일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현재 상황만 탓하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더라도 열심히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거죠. 즉, 현재의 나의 생활 태도는 나의 몸 속에, 흐르는 피 속에 남는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군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나는 의대 14년 공부, 프로그래밍 10년을 날밤을 새면서 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삶은 그 전의 경험과 지식을 응용해서 사는 것인데, 어찌보면 아주 비효율적인 삶을 살았죠. 얼핏 지난 노력들이 지금의 일과는 무관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식은 어디론가 사라지지만 삶의 태도는 남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내게 공대나 경영을 공부했으면 훨씬 빨리 성장을 했을 거라고 하는데, 사실 그간의 삶이 현재의 나를 이루게 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CEO로서 산다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남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자기 인생에 보탬이 안 됩니다. 열심히 사는 게 두고두고 남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멘토가 전하는 위문품


안철수 교수가 자신의 저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김영사 펴냄)에 사인을 담았니다. 이 책은 성공의 참된 의미와 방법론, 급변하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자세와 마인드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