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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국군의 날 특집] 부대탐방 - 백골부대 '38선 최선봉 돌파연대'

 

백골정신으로 무적불패의 신화 이어간다

10월 1일 3·8선을 돌파한 ‘38선 최선봉 돌파 연대’



국군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동시에 창군, 올해로 63주년을 맞았다. 국군의 날인 10월 1일은 우리군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육군 백골부대 38선 최선봉 돌파연대(제3사단 23연대)가 1950년 38선을 맨 처음 돌파한 날이며, 1949년 10월 1일 육군항공에서 공군이 독립, 3군 체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38선 최선봉 돌파연대의 38선 돌파는 북한의 기습 남침에 고전하던 전세를 뒤집고, 국군이 단독으로 반격작전을 펼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이런 이유로 국군의 날 가장 생각나는 백골부대 38선최선봉 돌파연대(연대장 전성기 대령육사 43기)를 찾았다.



창군 63년,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는 국군
 

1948년 8월 15일, 광화문 앞 광장에는 대한민국의 건국(建國)과 건군(建軍)이라는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보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이윽고 오후 1시 30분, 고종 황제에 의해 대한제국군의 마지막 ‘관병식(觀兵式)’이 열린 지, 50여년 만에 재개된 국가통수권자에 의한 국군의 사열식이 시작되자 광장은 감격의 눈물과 함성으로 가득했다.중앙청에서 열린 ‘정부수립국민축하식’이 끝난 직후 열린 사열식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각부 장관, 그리고 육·해군의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40분간 진행됐다. 군악대를 선두로 육·해군의 정예부대와 특별부대 순으로 행진이 이어졌다. 정부수립과 동시에 통위부는 국방부로, 조선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는 각각 육군과 해군으로 개편되면서 국군이 창설되었다. 그리고 1949년 10월 1일 육군항공에서 공군이 분리 독립함으로써 3군 체제가 정립되었다. 육군은 조선경비대(1946년 1월 15일), 해군은 해병병단(1945년 11월 11일), 공군은 항공부대(1948년 5월 5일)를 뿌리로 한다. 한편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창설되었으며, 여군은 1950년 8월 14일 학도호국단 교관요원으로 배속되었던 여성장교들을 중심으로 육군 제1훈련소에서 창설되었다. 광복의 감격과 건국의 희망을 안고 창설한 우리 군은 북한의 기습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냈으며, 월남전을 통해 강군의 면모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건군 63주년을 맞은 우리 군은 병력과 무기체계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군대로 발전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오쉬노부대 등은 분쟁 및 전후복구 지역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6ㆍ25전쟁 이후 군은 우리 사회의 현대화와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36년간 나라를 빼앗기고, 해방공간의 좌우대립과 6ㆍ25전쟁이라는 비극을 치르고도 짧은 기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산업화와 수출의 주역들이 군 복무를 통해 조직에 대한 충성과 단결력을 자연스레 체험했기 때문이다.

 

고무신에 헝겊 덧대고 절뚝이면서도 북진
 

1949년 6월 20일 마산시 월영동에서 창설된 38선 최선봉 돌파연대는 인천상륙작전 직후 동해안에서 북한군 5사단과 대치하고 있던 백골부대의 주력으로 적의 완강한 저항을 뿌리치고 최초로 38선 일대에 도착했다. 특히, 38선 최선봉 돌파연대는 전진을 계속해 양양군 마주리 일대에 선착했다. 당시 박격포 탄약수로 38선을 돌파했던 박한진 예비역 육군 대령(당시 이등병)은 저서 『근초록(根梢錄)』에서 “9월 18일 포항을 탈환한 뒤 승승장구하며 9월 30일 오후 38선 남쪽 2km 지점인 양양군 인구리에 다다랐다. 38선이 보였다. 병사들이 ‘와아, 38선이다. 저걸 넘어 김일성의 목을 받으러 가자’라고 환호하는데 갑자기 정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북진을 놓고 유엔군과 이견이 있다는 건 전혀몰랐다. 하루 쉬고 기력을 충전한 뒤 진격하려는 줄 알았다”라고 회고했다. 잇단 승전으로 사기는 충천했지만 매일 30여Km를 행군하며 북상한 장병들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질풍 같은 진격에 물자 보급이 뒤따르지 못해 군화도 고무신 밑창에 헝겊을 씌운 형태였다. 하지만 장병들은 끔찍할 정도로 발에 물집이 생겨 절뚝이면서 행군을 했다.고구마밭에서 숙영을 마친 10월 1일 오전 진격명령이 떨어지자 장 병들은 서로를 얼싸 안았다. 철모와 군복에 나뭇가지와 풀을 꽂고 신이 나서 38선을 넘었으니, 전사에 기록된 공식 시간은 오전 11시 45분이다.

 





‘필사즉생, 골육지정’의 백골정신 계승

38선 최선봉 돌파연대는 영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적 사살 142명, 포로 56명)을 시작으로 6ㆍ25전쟁 때는 울진전투, 영덕ㆍ강구지구전투, 형산강 도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 낙동강 최후 방어선의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과 동시에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6ㆍ25전쟁 기간 중 적 사살 4,628명, 포로 167명의 전과를 올렸다. 38선 돌파 이후, 북진을 계속하여 북한군 제5사단을 격멸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원산을 탈환함으로써 전 장병이 일ㆍ이 계급 특진과 함께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전공으로 ‘38선 최선봉 돌파부대’라는 불멸의 부대 명칭을 얻었으며, 6ㆍ25전쟁 이후에도 대침투 작전 시 침투한 적을 섬멸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38선 최선봉 돌파연대는 51대 연대장인 전성기 대령을 중심으로 ‘필사즉생, 골육지정’의 백골 혼으로 화합ㆍ단결하여 완벽한 전투준비태세, 실전적 교육훈련, 병영문화 혁신을 바탕으로 선배들이 이룩한 명예와 전통을 계승하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최정예 백골용사가 될 것을 다짐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백골전사 육성을 위해 4대 핵심과목(정신전력, 사격, 체력, 전투기술)을 중점으로 전투프로는 핵심과목 80%이상, 특급전사는 90%의 합격률을 얻도록 월 단위 평가를 시행하고있다. 전장을 지배할 수 있는 체력 및 정신력 배양을 위해 3km구보와 거점 도보답사, 순환식 체력단련 및 측정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공격전투간 지속적인 전투력 발휘를 위한 돌격선 전력질주 훈련을 실시하고, 산악능선 위주의 전술적 행군을 강화(연간 1000km 지속행군)하여 기초 체력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올해로 창설 62주년을 맞이한 38선 최선봉 돌파연대는 3개의 대대와 6개의 직할중대로 편성되어 있으며, 이중 비호대대(대대장 백강중령ㆍ육사 49기)와 백호대대(대대장 이영동 중령ㆍ육사 49기)는 사단의 정예 백골용사를 양성하는 신병교육대 임무를 맡고 있다. 청호대대는 사단의 유일한 예비대대로서 기동타격 및 각종 훈련과 유해발굴 작전 등의 주요과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 신교대는 각각 5주와 3주간의 신병교육을 실시하는데, 제1신교대는 백골인이 되기 위한 과정을 갖고 있다. ‘백골의식’ 행사로 백골 모양의 잔에 깨끗한 ‘정한수’를 떠놓고 의식을 치루며 백골인으로 거듭나고 하나가 되는 것. 백골의식을 통해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의 진정한 백골부대의 용사가된다. 백골인으로 다시 태어난 신병들은 제2신교대에서 사격 및 각개전투, 개인 주특기별 숙달 훈련과 팀단위 훈련 위주의 강도 높은 교육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출되게 된다.

 


전투태세확립으로 언제 싸워도 반드시 승리

청호대대는 지난해부터 광덕산과 상해봉 일대를 중심으로 유해발굴 작전 중에 있다. 광덕산과 잠곡 저수지 일대는 6ㆍ25전쟁 당시 국군 제6사단이 중공군 9병단 및 13병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의 현장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더 뜻 깊다. 연대장 전성기 대령은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면서 전사에 이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선배용사들을 우리가 너무 늦게 찾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차디찬 땅속에 누워있는 단 한구의 유해까지 찾아내도록 무한 책임을 갖고작전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청호대대장인 이완주 중령(3사 26기)도 “사랑하는 가족과 전우들에게 돌아가야 할 마지막 한 구의 유해까지 찾아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38선 최선봉 돌파연대는 지금 당장 전투에 임할 수 있는 기초와 기본이 확립된 부대를 만들기 위해 전 장병이 군인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임무를 상기하며 행동화하여 정신적 준비태세를 확립하는데 진력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사명하복의 정신·지휘주목·일사분란한 행동이 생활화 되고, 분대장부터 상급지휘관까지 24시간 지휘되는 군령(軍令)이 확립된 부대, 평시 부대활동을 지금 당장 싸우기 위한 준비라는 인식으로 행동하는 군인다운 군대, 군대다운 군대를 육성하기 위해 열정을 다하고 있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부대, 기본자세가 확립된 군인다운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장병 모두가 내·외적 자세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 대령은 주기적인 현장지도를 통해 복무자세 교정과 군대예절을 지도하는 등 장병 개개인을 세심하게 살피는데 열정을 다하고 있다. 무엇보다 밝은 병영문화 조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다. 전 대령은 “백골부대의 역사와 전통은 38선 최선봉 돌파연대가 책임을 질 것”이라며, “6ㆍ25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깊은 뜻을 되새기며, ‘오늘 당장 전쟁이 발발 할 것’에 대비하여 지금 당장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준비태세가 확립된 부대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KCTC 훈련에서 적 3참호까지 진출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부대를 지향하는 38선 최선봉 돌파연대 청호대대는 2011년 KCTC 훈련에 대비하여 전사자질, 소부대 전투기술, 대대통합전투수행에 중점을 두고 사전 준비를 했다.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한 청호대대는 KCTC 훈련장으로 향하면서 실제 전쟁이라는 상황 설정 하에 대대장 이완주 중령이 출정사를 통해 장병들의 사기를 고취시켰다. “북괴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 시간 이후 언제 다시 부대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다. 대대장은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할 것이다.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렵고, 가장 위험한 곳엔 언제나 대대장이 함께 할 것이다.” 이러한 준비와 정신무장으로 11중대 1개 분대 규모가 적 3참호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11중대장 김경철 대위(3사 42기)는 KCTC 훈련이 “부대의 창끝을 날카롭게 갈아준 숫돌이 되었던 훈련을 통해 많은 것을 몸으로 느끼고 경험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38선 최선봉 돌파연대는 전군에서 유래없는 5주간의 야외종합전술 훈련도 실시했다. 보병 대대로는 최초로 지원 및 배속부대가 모두 참가한 가운데 텐트를 치고 숙영하며 장병 개개인의 전투기술에서 분/소대 전투기술 그리고 대대급 전술훈련까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실시했는데, 지금 당장 적과 싸워도 반드시 이기는 부대를 만들기 위한 상시 전투력 보유의 일환이다.

 

격전지를 누빈 노병들의 애끓는 전우애

6. 25전쟁 격전지에서 명성을 휘날린 부대인 만큼 참전용사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참전 당시 적과 싸우며 땀과 피를 흘렸던 전우들의 뜻을 되새기며 호국영령에 대한 넋을 기리는 돌파연대 전우회는 ‘화백회’와 ‘3일 약속 전우회’, 그리고 ‘호림유격회’ 등이 있다. 화백회 중공군의 참전으로 태백이 다시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태백중학교 학생 127명이 1주일간 행군을 해서 경북 봉화에 주둔한 돌파연대를 찾아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학도병들은 연대 특공대로 눈부신 전공을 세웠는데, 화랑도의 ‘화’자와 태백의 첫 자를 따서 ‘화백회(花白會)’라고 한다. 3일 약속 전우회 함경북도 출신 애국청년 156명은 성진항 철수 작전에 참가한 뒤, 연대로 자원입대 후 수색중대에 배속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당시 집을 떠나면서 자식 걱정에 울음을 참지 못하는 어머니들에게 “국군과 함께 철수 했다가 3일 정도 후에 돌아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지만 영영 마지막이 되었기에 ‘3일의 약속 전우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림유격회 1949년 2월 25일에 창설되어 대북공작, 후방교란, 군사시설파괴 등의 임무를 부여받고 작전에 투입되어 혁혁한 공을 세우다가 연대에 편입된 호림유격대의 전우회이다. 그 중에서 호림 3중대(현 청호대대 10중대)는 38선을 최선봉으로 돌파했는데, 맹호출림(猛虎出林)이란 단어가 명칭의 유래이다.

 

GP 완전작전 수행하는 쌍둥이 형제 두 쌍

연대 예하의 최우수 중대는 최전방 GP 완전작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수색중대이다. 골육지정의 전우애로 똘똘 뭉친 최정예 특급 전사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더욱더 특별한 것은 대한민국 군인 중 0.01%만 투입될 수 있다는 이곳에 쌍둥이 형제 두 쌍이 그것도 같은 GP에서 복무하고 있다는 것. 주인공은 강민영ㆍ영민 일병과 이원학ㆍ인학 일병이다. 강민영ㆍ영민 일병은 4회째, 이원학, 이인학 일병은 3회째 GP에 투입되었다. 최초 GP 투입시에는 쌍둥이 두 형제 모두 경계병 임무를 수행했지만 지금은 임무가 바뀌었다. 형인 강민영 일병은 조리병으로 동생인 강영민일병은 상황병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강민영 일병은 대학재학 중 요리 동아리인 ‘드림팀’으로 활동하며 2010년 서울요리박람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역 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어하던 터라 요리를 할 수 있어 마냥 즐겁다고. 임무수행 능력이 뛰어난 동생 강영민 일병은 소대 내에서 상황조치 능력이 우수한 자원으로 편성하는 상황병으로 GP를 경계하고 있다. 이원학ㆍ인학 일병 형제는 기관총 사수와 유탄발사기 사수로 복무하고 있다.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싫어 동반입대한 못 말리는 형제다. 미용사가 꿈인 형 이원학 일병은 GP원들의 두발 정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 평소에도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는 형제는 “우리 앞에는 적이 있고, 우리 뒤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조국과 부모 형제가 있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정예 병력으로 구성된 GP중대는 전 중대원 특등 사수와 GP별 화기 사거리를 고려한 개인화기 사격술훈련으로 전투프로와 특급 전사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대장 윤만규 대위(3사ㆍ38기)는 “각종 전술 전기를 연마하고 대적관이 확립된 수색중대원들은 지금 당장 싸워도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최대 규모의 회원수와 최고의 사랑을 베푸는 부모카페

신병교육대 다음-인터넷 까페인 ‘백골비호’를 모체로 지난해 추가 개설된 ‘아들사랑 백골사랑’ 까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회원수 1,060명을 자랑하는 부모모임 단체이다.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장병 부모들의 친목도모와 정기모임을 통해 활발한 활동하고 있다. 지난 9월 11일 창설 1주년 기념식을 가졌으며, 부대 위문 활동 횟수가 16회에 달한다. 매달 정기적인 후원금 모금활동으로 신병교육 수료식 때 부모님이 면회를 오지 못하는 신병들에게 정성과 마음으로 준비한 음식을 함께하며 마음을 달래주고 훈련으로 거칠어진 손을 잡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