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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특집 인터뷰] 조은 시스템 김승남 회장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 마음껏 미쳐라'


국내 굴지의 경비관련 업체인 조은시스템과 최대의 취업포털 잡코리아를 창업한 김승남 회장은 직업군인에서 IT기업의 CEO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직원 4명으로 4평의 작은 창고에서 창업해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과정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다. 김 회장의 성공신화는 특별하다. 창의적인 도전정신과 감사, 그리고 나눔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올해 칠순이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컴퓨터로 구현되는 새로운 세상인 유비쿼터스 시대를 거침없이 주도하고 있는 김 회장으로부터 ‘아름다운 도전’과 ‘감사하는 삶’에 대해 들어 보았다.         

취재 / 홍민석(편집위원)

중년의 한 사내가 있었다. 중령으로 예편한 그는 취업이 마땅치 않자 대관령 고랭지 채소를 가져다 서울에서 팔 궁리를 한다. 하지만 친지의 빚보증을 서 주었다 빈털터리가 되자 충북은행에 입사해 안전관리실장 등을 지내고, 신설된 지방보험사의 법인영업부장 옮긴 후 상무이사까지 승진한다. 그러나 54세에 사업가로 변신한다.
빚 갚으며 어렵사리 모은 2000만원 중 1000만원을 교회에 헌금하고 나머지로 4평짜리 친척집 창고를 얻어 창업한 회사가 경비보안전문회사인 조은시스템이다. 아내를 포함한 직원은 달랑 4명. 6개월 동안 실적이 전무하다 은행에 청원경찰 한 명을 취업시키면서 물꼬가 트여 매년 꾸준하게 성장을 한다. 하지만 보안회사 특성상 창업 이후 17년간은 명절과 공휴일에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회사에 나와 근무하는 직원들과 함께 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인터넷 기업을 창업하겠다고 결심한다. 인터넷이 미래 사업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무실 옆 조그만 공간에서 창업한 회사가 온라인 구인구직업체 잡코리아다. 자신의 지분 50%를 직원 4명 모두에게 나눠주었고,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불철주야 최선을 다했다. 모두가 주인인 잡코리아는 창업 2년 만에 온라인 구인구직업계 1위를 차지한다. 잡코리아를 통해 매년 120만명 이상이 취업을 하고 있다. 이어 보안이 사람이 아닌 장비로 첨단화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창업한 조은세이프 역시 시대 흐름을 앞선 덕에 독보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그것도 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성실함과 창의적인 도전정신으로 성공신화를 이룩한 주인공이 바로 김승남 회장이다. 조은시스템을 비롯한 4개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1500억원이며, 4,0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조은시스템은 대형 외국계 기업과 대기업 사이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통합경비보안 전문기업이다. 특수경비와 공공금융경비분야에서는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은세이프는 무인경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두 뛰어난 수익모델을 갖춘 탄탄한 기업들이다.
김 회장은 손꼽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가로 조은문화재단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사회를 밝게 변화시키는데 기여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범한 재단은 문화지원,인재지원,연구지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인 조은프로소싱을 설립해 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큰 경쟁력

김 회장이 지향하는 비전은 첨단 디지털 기업, 모범적인 공익법인, 헌신하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우리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 있게 쓰지 못하는 돈은 돈이 아니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버린 만큼 부자가 된다’고 강조하는 김 회장에게 성공비결을 묻자 “부족한 저를 이끌어주고, 어려울 때마다 아낌없이 베풀어 준 주변 분들의 힘과 도움”이라고 말한다. 하는 수 없이 60만 장병들을 위해 성공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고 말하자 “굳이 나만의 방식을 말한다면 두 개의 지주가 있었다”며 “하나는 ‘미치광이’로 살았고, 다른 하나는 ‘삼다(三多)’를 삶의 지표로 삼고 사랑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이 말하는 미치광이는 무언가에 푹 빠지는 열정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미쳤던 김 회장은 이를 통해 잡코리아와 조은세이프를 창업했다. 국내에 PC가 도입되던 초기에 45세였던 김 회장은 학원에서 중학생들 틈에 끼어 컴퓨터를 배웠다. 286 컴퓨터를 가지고 Dos System을 공부했던 김 회장에게 은행의 전산 요원들이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 이밖에도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언어에 미치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엔터테인먼트나 인류학 같은 학문에 미쳐 보고 싶다고 말한다.
‘삼다’는 많이 일하고 노력하는 다노(多努), 책 많이 읽고 공부하는 다학(多學), 그리고 무엇이든 많이 나누어 주는 다시(多施)다. 따라서 김 회장의 삶은 뜨거운 열정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개발하며 도전하고, 결실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16직후 입대해 월남에 파병되기도 했던 김 회장은 주로 작전분야에서 근무했다. 김 회장은 군 생활에 대해 “돌이켜 보면 열정을 다한 21년이었다”고 밝혔는데, 이후의 삶은 열정에 창조적 도전정신이 더해졌다고 할 수 있다.
‘도전을 즐겼다’고 말하는 김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도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며 “도전을 하면 변화가 이루어진다. 변화의 과정을 사랑한다는 자체가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다”고 강조한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에 IBM노트북이 출시 된 첫 날, 월급의 3배를 주고 구입했던 때의 설레임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래서 항상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리며 살고 있는데, 진정한 ‘도전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김 회장의 좌우명은 ‘항상 감사하라’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할 일만 많이 생기고, 원망하는 사람은 원망할 일만 생긴다는 지론이다. 그래서 모든 일에 감사만 하면 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경쟁력의 요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