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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파워인터뷰] 마이너리티를 극복하며 '최초의 길' 달려온 여성 리더

 



마이너리티를 극복하며 ‘최초의 길’ 달려온 여성 리더

전재희 국회 문방위원장

 

 

 

 

“여중생 시절 위문편지 쓰던 마음으로 국군장병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지방대 출신, 게다가 여성.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난날 한국 사회에서 그 두 가지 사실은 ‘더블 핸디캡’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힘겨운 가정형편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기의 길을 개척한 그녀는 ‘그깟’ 현실의 장벽 앞에서 좌절할 수만은 없었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넘어짐을 일어서기 위한 방법을 습득하는 지름길로 삼아왔던 그 모습이 ‘아프니까 청춘’인 요즘 젊은이들의모습에 투영된다. 전재희 국회 문방위원장의 인생 이야기, 그리고 국군 장병에게 전하는 응원 메시지!

 

 

 




 

보건복지부 장관 이어 문방위원장 중책 수행

 

국회 상임위 ‘문방위원장’…. 명칭이 길다는 이유로 그렇게 줄여 부른다. 정식 명칭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 위원회 위원장’이다. 문화, 체육, 관광, 방송, 통신! 이 시대의 총아라 할 만한 중요한 분야는 다 들어 있다. 올해 2월부터 국회 상임위의 중책을 맡은 전재희 문방위원장은 지난 7월 IOC총회가 개최된 남아프리카공화국더반으로 날아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데 한몫을 하기도 했다. “문화가 국가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분야라는 생각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열심히 매달렸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상대적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지식정보산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관광을 진흥시키는 일은 높은 고용계수로 그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를 위해 제도 개선과 함께 콘텐츠 진흥을 위한 공제조합 설립 법안을 발의, 국회 법사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문화는 우리 삶의 질을 높이며, 국가경쟁력 향상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분야 입니다. 문화 재정 확충이 더욱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전재희 위원장은 여성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면모 못지 않게 업무를 철저히 장악하는 카리스마로 정평났다. 보통 1년 남짓 재직한 이전 장관들과 달리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2년여를 장수하며 무난하게 업무를 수행한 것도 30년 행정경험에서 나온 전문성과 지자체장 및 3선의원 등을 거치며 쌓은 풍부한 경험의 결과란 평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한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정말 굵직한 사건과 현안이 많았지만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열심히 매달린 직원들 덕분에 나름의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위기에 처한 가정이 많았는데, 이를 체계적으로 찾아내고 맞춤형 처방을 제시하는 사회복지통합망을 구축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국민적 우려를 낳았던 신종 플루에 대한 체계적 진료시스템을 갖춘 것이나, 보건의료산업 및 뷰티산업 활성화에 역량을 집중한 것도 잘했다고 생각하구요.” 그렇다면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더욱 고질화 되어가는 ‘저출산 문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저출산 문제에 매달리며 답답한 마음에 “내가 더 낳을 수도 없구…”라 심경을 토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전 위원장은 젊은 장병들이 많이 보는 <HIM>과 만난 김에 장관직을 물러난 지금도 채 가시지 않은 미련을 털어놓는다.

 

“빨리 좋은 사람 만나 가정 꾸리고 애를 많이 낳는 것도 애국이며 나라를 지키는 일입니다. 하나에 올인하는 것보다 여럿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남는 장사구요. 제 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국가도 보육 등 여건을 조성하는데 힘을 쏟아야 하지만, 저출산 문제 해결은 결국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는 겁니다.”

 

 

 


뒤에 남은 건 태워버리자며 치열한 삶 살아

 

전재희 위원장은 이 기사의 타이틀처럼 그야말로 ‘마이너리티를 극복하며 최초의 길을 달려온 여성 리더‘라 할 수 있다. 이력에서부터 ‘여성 1호’라는 수식이 한 둘이 아니다. 우선 전 위원장은 1973년 여성 최초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인물이다. 1994년에는 경기도 광명시에서 여성 최초의 관선시장을 지냈다. 그해 전 위원장이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한 것도 여성의 사회적 위상과 영역을 한단계 올린 상징적 인물이었기 때문. 그뿐 아니다. 전 위원장은 지자체시대의 도래와 함께 1995년 여성 최초의 민선 시장에 선출된다. 이후 전 위원장은 한국의 대표적 여성 리더로서 자리매김 해왔다. 3선의 국회의원으로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최고위원을 거쳐 2008년 제47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활동했던 것. 하지만 처음부터 그 모든 게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힘겨운 가정형편에 어렵게 공부했기에 누구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잘 이해한다는 전 위원장은 영남대라는 지방대 출신에 여성이란 마이너리티로서의 아픔과 한계를 절감하면서 한순간 한순간의 삶을 헤쳐왔다고 말한다. “광명시장 시절에도 재래시장에 나가면 저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한마디로 보통 아줌마인 거죠. 그러한 전형적‘아줌마 정신’과 ‘끈질긴 생존력’으로 때로는 ‘왕따’가 되는 분위기에도 버텨온 겁니다.” 정말 시작부터가 치열한 삶이었다. 개천에서 용난 가난한 지방여학생의 합격 미담은 1973년에 발행된 ‘주간여성’에도 실렸을 정도. 새 책 한 번 제대로 사주지 못했지만, 억척스레 딸을 뒷바라지한 어머니 조추자 여사와 함께였다. “어머니가 여러 임시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가정을 꾸렸습니다. 학창시절에 한 번은 어머니를 따라 고등학교 수험장을 찾아가 계란 등 주전부리 행상을 한 적도 있지요. 어린 여학생의 감수성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럴수록 내가 세상을 살아갈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절박감에 죽기살기로 공부했던 거죠.” 대구여고 시절 전 위원장이 가슴에 새겼던 좌우명은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였다. 고시공부를 할 무렵에는 좀 더 전투적인 문구로 바뀌었다. ‘뒤에 남은 것은 태워버려라’가 그것.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지난 날과 주변을 돌아볼 연륜이 되면서, 전위원장은 새로운 가훈을 갖게 됐다고 한다. 성경 말씀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군인 아저씨’였는데, 이젠 ‘아들’같은 모성 느껴져

 

전재희 위원장은 얼마전 52사단 화살부대를 찾아 장병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부대를 방문한 첫 인상은 ‘하나같이 멋진 사나이들이 그곳에 수두룩 하더라’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애기’ 얘기도 했다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데, 젊은 장병들도 인식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로 그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월간<HIM>, 장병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 “그럼 아예 예쁜 여성들로 구성된 대규모미팅단이나 맞선단을 이끌고 부대를 방문해 주시든지~”

“예전에는 군인들이 모두 아저씨 같았는데, 지금은 모두 아들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요. 장병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실제 제 아들도 군대 갔다왔잖아요. 카투사 복무를 했는데, 논산훈련소로 아들을 전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마음이 착잡하든지…그런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군대는 정말 잘 보낸 것 같아요. 글쎄 하루 아침에 효자가 되더라구요.” 군대 간 아들이 보내온 첫 편지에 눈물이 글썽했다는 전 위원장은, 점점 장문의 편지를 주고 받는 재미를 쏠쏠하게 만끽하며 자식 키운 보람을 느끼기까지 했다고. 하지만 전역을 막을 수도 없는 일, 아들은 군대를 마치고 결혼해서 잘 산다. 지금은 아들 대신 돌을 막 지낸 손주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뻐 미치겠다고. “제가 대구여자중학교를 나왔는데 당시 2군사령부가 학교 담을 마주하고 있었어요. 국기하강식 때마다 담장너머 들려오는 군가 소리에 중학생 무렵부터 국가와 민족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 생기더라구요. 그땐 ‘군인아저씨’들에게 위문 편지도 많이 보냈는데, 안타깝게도 답장은 받지 못했어요. 치약, 칫솔, 사탕을 포장해 위문품을 보냈던 추억도 새록새록 합니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얘기해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먹던 사탕 포장하기 없기!’” 전재희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마침 연평도 피습 1주년을 즈음해 이루어졌다. 남 북 대치의 현실에서 굳건한 국가안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전 위원장은 가장 활동이 왕성한 나이에 사회와 떨어져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다 즐겁고 보람찬 병영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닥치는대로 섭렵, 독서광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던 어린 시절 책을 통해 고단한 현실을 잊고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온 자신의 경험처럼, 군 장병들도 책이라는 창을 통해 더 큰 세상을 꿈꾸기를 바란다는 것.

“문화부에서도 병영 독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국회 차원에서도 그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도 기회가 닿는 껏 국군 장병 여러분을 위한 응원을 힘차게 할 생각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한해 마무리를 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