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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멘토에게 길을 묻다] GS칼텍스 허동수 회장 특별 인터뷰





‘이 땅의 젊은이에게 HIM을 주는 에너지’

 

GS칼텍스 허동수 회장 특별 인터뷰

 

 

 

 

 

“석기시대가 끝난 건 돌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청동이 개발됐기 때문!”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에너지문제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다. 동서고금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이 숙제를 풀기 위해 피나는 쟁탈전을 벌이며 때로 전쟁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난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정유회사로 출발한 GS칼텍스는 대한민국 석유산업을 선도하는 글로벌기업이다.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의 기업임에도 GS칼텍스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매출의 절반이 넘는 22조원(9월말 기준) 이상의 석유류 수출로 올해 ‘수출 200억불탑’수상이 예약되어 있다. 그러한 국가기간산업을 이끌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준 아주 특별한 인물을 월간 <HIM>이 만났다. 지난 40년 동안 GS칼텍스에 몸담으며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을 이끌어온 ‘미스터 오일’ 허동수 회장이 예비역 육군 병장으로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PART 01. 50년 에너지 인생과 GS칼텍스 이야기

 

허동수 회장과의 특별 인터뷰를 위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를 찾은 지난 11월 22일은 마침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사회공헌사업을 확산하기 위해 GS칼텍스와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육기부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날이었다. 이미 GS칼텍스는 허동수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1994년부터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내 최대 규모의 녹색환경 미술대회, 녹색환경 글쓰기대회를 개최하며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 왔으며, GS칼텍스 서울Kixx배구단 운영, 바둑대회를 통한 우리 바둑의 세계화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해오고 있다. 특히 지난 2006년에는 1천억원 규모의 GS칼텍스재단을 설립하여 녹색나눔과 지역참여의 두 가지 테마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생산 공장이 위치한 여수에 21만평 규모로 조성하는 문화예술공원 ‘예울마루’는 내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과의 MOU 체결 1시간 후 GS타워 32층에

서 허동수 회장을 만났다. 바쁜 일정탓에 평소 언론과의 인터뷰를 사양하기로 유명한 허 회장이 극히 예외적으로 <HIM> 독자들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육군 병장으로 당당히 병역을 마친 예비역으로서 국방에 헌신하는 장병과 우리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해 스스로 정한 금기를 깬 것.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의 3남 중 2남인 허동수 회장의 ‘미스터 오일’ 인생은 보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60년 연세대학교 화공과에 입학하며 시작됐다. 대학을 졸업한 후 허 회장은 당시 화학공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국 위스콘신대학으로 유학, 화학공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세계적 에너지기업인 쉐브런에서 3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GS칼텍스로 이름이 바뀐 국내 최초의 민간정유회사인 호남정유에 입사한 것은 지난 1973년. 이후 1994년 대표이사 사장, 2003년 대표이사 회장으로 활동하며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석유제품 수출대국으로 발돋움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 회장님께서는 대학시절부터 시작해 무려 50년을 에너지산업에 몰두하며 대한민국의 석유산업 발전에 기여해 오셨는데,특히 올해는 GS칼텍스가 수출 200억불탑을 수상할 것으로 보입니다.그런 면에서 회장님께서 1960년 화학공업과를 전공한 것은 대한민국 에너지산업의 미래에 축복과 같은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화공과 진학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나는 1960년 보성고등학교 졸업 당시 이과가 아닌 문과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집안 어르신의 권유도 있었지만, 고민 끝에 국가기간 산업이자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석유와 석유화학의 보급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해 연세대 화학공학과에 들어가게 된 거죠. 대학 졸업 후에는 어머니의 권유로 1966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5년만에 화학공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처음 3년 동안은 하루에 3시간도 못자고 공부했습니다. 당시 위스콘신대학교는 화공과 세계 최고의 대학이었는데, 학과장에게 직접 장문의 편지를 써서 어렵게 입학허가를 받아낸 만큼 모든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해 정말 어렵게 공부를 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무려 40년 가까이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사에 몸담고 일하며, 세계적 경쟁력의 대한민국 석유산업을 일구신 인물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할 때 가장 뿌듯한 일은 무엇이신지요?

 

“나는 항상 ‘에너지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숙제’라 말해왔습니다. 나 역시 이 숙제를 풀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에너지를 가장 저렴한 가격과 가장 좋은 품질로 공급하기 위해 한 평생을 바쳐 노력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미 있고 뿌듯한 기억들은 많지만, 무엇보다도 하루 76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하는 세계 4위규모의 생산설비를 갖추고, 이와 함께 한 해 280만 톤의 방향방향족을 생산하여 단일공장 세계 최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여수공장을 초창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장을 이끌어온 것을 가장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히 앞서 말씀해주셨지만, 올해 GS칼텍스는 수출 200억불탑을 수상 할 예정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석유제품이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석유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일조했다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갖습니다.”

 

-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세계적인 석유제품 수출국으로 발돋음 했습니다. 다른 나라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며, 한국인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사례 같습니다. 이러한 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GS칼텍스는 매출의 절반이 넘는 19조원 이상을 해외로 수출했으며, 올해는 지난 9월말까지 이미 22조원을 넘어서고 있어 사상 최대의 수출이 예상됩니다. 이는 지난 2004년부터 환경오염 물질이 많고, 품질이 떨어지는 벙커C유 등 값싼 중(重)질유에서 휘발유, 경유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경질유를 뽑아내는 고도화설비에 과감히 5조원 넘는 투자를 집행했으며, 여기서 생산되는 석유제품들을 해외로 수출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석유제품 수출은 고사하고, 석유제품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닙니다. 더구나 석유제품이 우리나라를 수출강국으로 이끄는 효자품목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창 경제발전을 거듭하던 1970년말과 1980년초에 GS칼텍스에서는 늘어나는 석유제품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새롭게 공장을 증축했는데, 당시 2차 오일쇼크로 원유를 수입해 오기도 어렵게 되며 새롭게 지은 공장을 가동하기도 힘든 위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GS칼텍스 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중동 이외의 국가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원유도입선 다변화를 처음으로 시도하였고, 제3국에서 원유를 받아 정제한 후 다시 제품으로 판매하는 임가공 수출을 정유업계 사상 처음으로 성공시켰습니다. 결국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석유 한방울 안 나는 나라지만 석유제품을 수출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유류 수출국으로 이끌게 된 것입니다.”

 

-‘석기시대가 끝난 건 돌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새로운 청동이 개발됐기 때문이다’는 회장님 말씀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GS칼텍스도 미래 에너지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다각적인 신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준비하고 있는 ‘청동 분야’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언젠가는 ‘오일 피크(Oil Peak)’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화학공학을 처음 접하던 1960년대에 오일 피크예상 시점이 향후 30~40년 후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학자들은 오일 피크 시점을 30~40년 후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처럼 오일 피크가 계속지연 되고 있는 것은 첫째 오일샌드 및 오일쉐일 등에서 경제적으로 원유를 추출해내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며, 둘째는 심해유전 등을 시추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오일 피크가 올 것이며 장기적으로 전체 에너지 자원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하는 반면,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동시에 신에너지 사업도 잘 해야 합니다. 이에 GS칼텍스는 2차 전지용 음극재, 양극재 그리고 EDLC용 탄소소재를 비롯하여 연료전지, 박막전지 등의 신에너지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폐자원재활용(WTE:Waste To Energy)사업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석기시대가 끝난 것은 돌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새로운 청동이 개발되었기 때문’이기에 항상 새로운 에너지를 예의주시 하고 있는 겁니다

 

 





 

PART 02. I am your Energy, 청춘에 주는 이야기

 

허동수 회장은 한 해 매출이 40조원에 달하는 대기업의 회장 이미지와 달리 따뜻하고 소탈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고사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단지 쑥스러움이 많은 데다 나서기 좋아하지 않아…”라고 답하더니, “젊어서부터 책을 좋아했는데 머리를 식히기 위해 무협지도 즐겨읽는다”고 밝히는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회공헌에도 철학이 있다. 흔히 이맘때면 생색내기용 봉사가 이어지기도 하는데, 허 회장은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일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는 생각에, 모교인 연세대에 창의공학센터에서 특강을 통해 수십 년간 에너지 분야에 몸담으며 얻은 노하우를 나누는, 대기업 수장으로서의 흔치 않은 행보로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GS칼텍스는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서로에게 힘이 되자’는 슬로건 ‘I am your Energy’로 따뜻한 기업이미지를 표현한다. 장병들과 젊은이들에게 주는 이야기도 그가 인생을 살며 겪고 체득한 지혜를 전하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 먼저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는 사실이 눈에 띕니다. 사실 그 시대를 살았던 지도층 인사 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으로 돋보이는데, 군대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우리 집안은 군대에 가는 걸 당연시 해왔습니다. 삼촌께서는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지요. 나는 대학 재학중 국방의 의무를 먼저 마쳐야 더 큰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1961년 5월 10일 논산훈련소로 입대했습니다. 50년이나 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데요, 6일 후 5·16이 일어난 겁니다. 사격 연습을 한번이라도 받아본 신병들은 완전무장시켜 다 실어날랐죠. 나야 입대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훈련병이라 별일 없었지만, 그러한 비상상황 속에 많이 긴장하며 힘들게 훈련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훈련을 마치고는 국방부에서 병사들의 인사(人事)를 담당하는 행정병으로 근무하다가 국립묘지로 파견을 나갔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는 국립묘지가 국방부 소속이었는데, 지금같이 단장이 잘 안돼 있던 시절이라 거의 30개 사단에서 각각 소대규모의 병력을 파견해 화단정리 등 국립묘지를 관리했습니다. 나는 파견병력 약 천 여명에 대한 외출, 휴가 등의 근무관리와 휴가비 정산 등의 업무를 담당했는데, 일면식도 없던 수많은 사람들의 인사관리를 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그 무렵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군 생활이라면 정말 열악한 여건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래도 그러한 군 생활을 통해 인생에서 얻은 게 있다면?

 

“물론 그 당시 우리나라의 모든 여건이 결코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5·16 등으로 인하여 항상 비상대기를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행정병으로 국립묘지 파견근무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의 의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게내 인생의 큰 소득입니다. 군대에서 얻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교훈은 지금도 회사를 경영하는 철학의 으뜸 신조로 새기고 있습니다.

 

- 징병제 국가상황에서 군대에서 젊음을 보내고 있는 현실을 힘겨워 하는 병사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군 생활의 의미와 함께 꿈과 희망의 조언을 해준다면?

 

“요즘 군 생활이 많이 편해지고 좋아졌다는데 사실 그러한 생각은 편협한 관점에서 유발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군생활을할 때는 당장 의식주해결이 어려웠을 때라 먹고 살기 위해 군대에 장기 근무, 소위 말뚝을 박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옛날에는 상

상도 할 수 없었던 맛있는 음식들이 나오며 복무 기간도 줄었다고 하지만, 결코 군 생활이 편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엔 형제자매가 적기에 자유롭고 귀하게 자란 세대라 단체생활을 예전보다 더욱 힘들어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을 면접하다 보면 어학연수를 위해 거의 일 년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 사람들이 많던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군 복무를 이 인생에서의 마이너스 기간이라 생각하지 말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재무장 할 수 있는 ‘군대(軍大)로의 연수’라는 좋은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 전후세대라 전쟁을 잘 모르겠지만, 나처럼 전쟁을 겪어본 사람은 자주국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여러분들이 좀 더 힘을 내기를 바랍니다.”

 

- 회장께서는 얼핏 큰 역경이 없는 삶을 사셨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어떻게 그 고비를 극복하셨는지요?

 

“인생을 살면서 역경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그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한 발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잠깐 말했지만 1966년 당시 화공과 세계 최고의 대학인 미국 위스콘신대 유학시절 테스트 통과를 위해 처음 3년동안은 하루에 3시간도 못자며 참 어렵게 공부했던 시기가 있었고, GS칼텍스에 입사하여 경영을 하면서도 오일쇼크 및 각종 사고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러가지 역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갔습니다. 아무리 어려웠던 순간이라도 지나고 나면 오히려 ‘그때 내가 조금 더 잘 했으면…’하는 후회가 들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어떤 어려움이던지 좌절하지 말고 더욱 정신을 집중하면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회장님 홈피에 ‘더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더 스마트하게 일해야…’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회장께서 강조하시는 디지털경영, 스마트워킹과도 연관 있어 보이는데, 젊은이들에게 설명해주시자면?

 

지난해 임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스마트 워킹 및 스마트 기기에 대한 얘기가 나와 올해 전 임직원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한 바 있으며, 개인의PC에 문서를 저장하지 않고 전사적인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는 문서관리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수많은 정보를 남들보다 빨리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곧 스마트 워킹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워킹은 내가 1999년부터 정유업계 최초로 도입한 식스시그마 운동과도 일맥상통 하지요. 사소한 결함이라도 인정하지 않는 철두철미하고 악착같은 마음가짐이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디지털기기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종합적인 사고능력이 떨어지지 않나 우려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은 쏟아지는 정보를 선별 수용하기 위한 도구(Tool)에 지나지 않는데, 마치 디지털기기가 온 세상의 전부인냥 너무 맹신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고가 단편적이지 않도록 좀 더 종합적으로 생각하기를 조언하며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에게 책읽기를 권합니다.

 

- 회장님께서는 주로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지금까지 섭렵하신 책 중 우리 장병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으시다면?

 

“젊었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 지금도 신간부터 고전, 경영서적부터 무협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임직원들에게도 다양한 책들을 권하고 있는데, 팀장 이상 임직원에게 매 분기별로 선정도서를 정하여 한 권씩 제공하고 있으며, 각종 독서 활성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입사원들에게는 의미 깊은 책들을 한 권씩 직접 선물하기도 하는데, 일본의 작가 도몬 후유지가 쓴 『불씨』라는 책이 기억납니다. 일본 막부시대에 파탄지경에 이른 ‘요네자와’지방에 개혁의 불씨를 일으켜 이 지방 전체를 개혁의 용광로로 만들어 나가는 젊은 군주의 일대기를 표현한 실화로서,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고 악착같이 노력하면 불가능이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우리나라 군인은 세계 최고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지적으로 왕성한 시기의 우리 장병들에게 군 복무 중의 책읽기를 권합니다.

 

- 회장님께서는 두뇌스포츠인 바둑 애호가이신데, 바둑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군대에서도 바둑을 좋아하는 장병들이 많습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바둑을 배웠는데, 두면 둘수록 승부에 집착하게 되는 묘미를 느끼게 되더군요. 아마 7단 정도의 기력을 갖고 있지요. 요즘엔 회사일이 바빠 거의 대국을 가질 시간이 없지만, 지난 2001년부터 한국기원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바둑의 세계화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바둑이나 장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열광한다고 알

고 있지만 바둑은 많은 생각을 깊이 있게 할 수 있어 사고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 사고의 역발상, 즉 싱크 디퍼런트(Think Different)를 통해 도전정신을 배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바둑을 두기 시작하면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나치게 몰입하지만 않는다면 장점이 많아 젊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한국기원에서 군 장병에게 바둑을 보급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이 많으니 군대에서도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20대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할 지금의 길을 똑같이 걷겠다는 허동수 회장. 그에게서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후회 없이 도전하는 게 최선의 인생이라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끝으로 허 회장은 ‘열심히 기업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방위의 최일선에서 복무중인 장병 여러분들 덕분이라 생각하며 감사드린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장병과 젊은이들의 기여에 음으로 양으로 보답하는 것이 기업의 사명이라 여기겠다”라고 다짐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허동수 회장에게도 지금 이 순간 국방에 헌신하고 있는 독자들을 대신해 월간 <HIM>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