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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12월호 곰신데이트] 단단한 믿음 하나로 '오직 그대만'


 

육군 제3사단 보급수송대대 김대호 일병 & 김규리 양

 

단단한 믿음 하나로 ‘오직 그대만’

 

 

 

내숭일까, 연륜일까. 늦깎이 군화 김대호 일병과 곰신 김규리 양을 만났을 때 가장 처음 떠오른 질문이었다. 닭살스럽지 않게 조용히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랑이 두 사람의 가슴 속엔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들보다 군화와 고무신을 늦게 신다

 

대학교 졸업반 때 친구에서 연인으로 6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항상 붙어 다녔던 김 일병과 규리 양은 지난 3월 2일 뒤늦게 군화와 고무신을 신었다. 올해 나이 30살인 두 사람, 때 아닌 이별을 맞이한 것. 하지만 군 입대가 늦었다고 해서 김 일병을 오해하면 좀 곤란하다. 김일병은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군에 늦게 입대한 케이스다.

“저는 정말 군대에 빨리 입대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직원들이 그런 저를 말렸죠.”

남친의 군 입대를 막는 사람이 여친이 아닌 직원이라? 그렇다. 김 일병은 군 입대 전 건설회사 대표였다. 또래보다 일찍 일을 시작한 김 일병은 직원들의 서류를 결재하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랴 바빴기 때문에 펜을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직원들은 대표의 부재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 일병이 군 입대를 늦춰주기만을 바랐다. 그렇다고 규리 양에게 김 일병의 군 입대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분신처럼 함께 있다 갑자기 남친이 옆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처음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대호가 군에 입대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는데, 나이 들어서 가는 거라 고생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엄청 울었어요.” 하지만 헤어짐의 아픔도 잠시. 규리 양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김 일병의 성격이 워낙 차분하고 어른스러워서 군 생활을 잘 해낼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경리대원인 김 일병은 실제로도 매일 같이 이어지는 상황 업무에도 불평 없이 성실하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다. 또한 규리 양과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부대 자랑을 많이 한다. 월동 준비와 신형전투복 교체로 바쁜 요즘도 그의 부대 사랑은 끊이지 않는다고. 일병이지만 말투는 중대장(?) 같았던 그와 투정부릴 줄 모르는 규리양의 평소 데이트는 유난스럽지 않았다. 두 사람은 노장(?) 커플인 만큼 건강을 중요시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아다닌 것. 규리 양이 면회를 왔을 때나, 김 일병이 외박을 나왔을 때도 두 사람은 리조트에서 머물며 쉬거나 먹는 것에만 전념했다. 두 사람 모두 집이 서울이면서도 놀이동산 한 번 가본 적 없었다니, 노는 재미보다는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커플이 확실하다. ‘그래도 그렇지, 6년 동안 정말 여행 한 번 안 해봤을까’하는 의심이 들때쯤, 규리 양이 선수를 친다. “아, 그래도 저희 여행다운 여행은 한 번 갔었어요. 대호가 군대에 가기 전에 대호 친구랑 셋이 싱가포르로 놀러 갔거든요. 현지에서 머무는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커플 여행을 했었죠. 그것도 대호가 가자고 해서 간 거예요. 크크.” 그러자 김 일병이 “네, 그때 정말 큰 맘 먹고 갔던 거예요”라며 한바탕 웃었다. 두 사람에겐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한가 보다. 그래, 사랑이란 그런 거다. 어차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직 하나뿐인 것을….

 

 

 



‘사랑’은 믿음으로 항상 곁에 있어 주는 것

 

규리 양, 아무리 봐도 ‘내조의 여왕’은 아니다. 다른 곰신들은 숱하게 보내는 편지와 선물을 남친에게 보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녀, 이번에도 뒷북을 친다. 기자가 물었을 때, 바로 대답해주면 좋으련만… 규리 양과 기자, 계속 엇박자다. “지난 빼빼로 데이 때 대호에게 손편지와 함께 빼빼로를 보냈어요. 그래도 중대장님 것까지 챙겨서 보냈죠. 아마 빼빼로 데이도 그냥 넘겼다면, 대호가 부대 사람들에게 볼멘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제라도 주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제가 입대하기 전에도 저희는 서로 소소한 이벤트는 챙길 줄 몰랐어요. 그런데 군대에서 빼빼로를 받는 기분이 꽤 괜찮더라구요. 규리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아이처럼 좋아하는 남친의 모습을 본 규리 양은 “정말? 내년 빼빼로 데이도 기대해”라고 말하며, 내조의 여왕으로 변할 것을 다짐했다.두 사람, 사진은 많이 찍어봤을까. 물어볼 것도 없이 사진 촬영할 때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커플, 사진도 안 찍어본 게 틀림없었다. 포토그래퍼가 두 사람에게 “자, 활짝 웃으세요!”라고 주문했을 때, 나란히 각목 자세로 서고 입 꼬리만 위로 살짝 올렸기 때문이다. 요청하는 포즈마다 어색했던 두 사람에게 과감한 포즈를 기대하는 건 해답없는 문제와도 같았다. 결국엔 준비해 온 사진 시안 중 그나마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골라 찍을 수밖에 없었다. 보는 사람은 두 사람이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소나무처럼 든든하게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그들의 사랑 방식이다. 김 일병은 자신의 월급 중 일부를 여친의 통장에 넣어주기도 하며, 규리 양은 다른 건 몰라도 남친을 보러 면회만큼은 3주에 한 번씩 꼭 간다. 달콤한 코코아나 타오르는 불꽃같은 사랑보다는, 서로를 믿으면서 친구처럼 오랫동안 사랑하고 싶은 두 사람. 어찌 보면 두 사람이 ‘사랑’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커플이 아닐까. 그래도 김 일병은 군대에 와서 새삼 깨닫고 있는 게 있다. 입대 전 여친과 함께 했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동안 여친에게 얼마나 무심했었는지를 말이다. 규리 양이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동안 챙겨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나보다. 이어 김 일병은 규리 양의 손을 꼭 잡으며, 가장 현실적인 멘트를 남겼다. “규리야, 나 군대에서 세운 목표가 있어. 88년생처럼 팔팔하게 몸과 마음을 젊게 해 건강한 모습으로 너에게 돌아가는 거야.” 규리 양은 말없이 웃고 있었지만, 김 일병이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