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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화제의 병사] 해병대 자원하며 받은 장학금 전액 다시 해병대에 기부한 ‘쌍둥이 해병’ 정도현&재현 이병

[화제의 병사] 해병대 자원하며 받은 장학금 전액 다시 해병대에 기부한

                                                        ‘쌍둥이 해병’ 정도현&재현 이병

 

 

 

 

“나눔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이것도 해병대 정신”

 

얼굴 생김새, 키, 하물며 목소리까지 흡사한 쌍둥이 형제. 그들과 같이 어울린 경험이 있다면, 둘을 혼동하는 실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구분이 된다. 그 이유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성격과 분위기가 다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얼굴도 마음 씀씀이도 닮은 멋진 쌍둥이 해병 형제가 있다.

 

글/ 박현아 인턴기자 사진/ 유성욱 기자

 

 

 

 

연평도 포격 소식 듣고 유학중 동반 자원입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 북한의 호전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내며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터졌다.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170여발의 포탄을 발사한 ‘연평도 포격사건’이다.

 

오후 식사 후 식곤증이 몰려올 무렵, 감기던 눈이 놀란 토끼눈으로 바뀌며 직장인들은 가족들에게 연락을, 학생들은 교수님께 휴강요청을 하는 등 대한민국 구석구석 그 영향을 안 받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곳은 연평도를 지키고 있던 해병대원들과 그들의 부모가 아니었나 싶다. 연평도 포격으로 해병대원 2명이 전사했으며,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동료를 잃은 해병대원의 슬픔, 또 아들을 그곳에 보낸 부모님의 심정…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기억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아닌 먼 타국에서 이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쌍둥이 형제가 있다. 바로 그 멋진 형제가 정도현, 재현 이병이다. 연평도가 포격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국의 방패’가 될 순간이라며, 동반 입대하자는 동생 정재현 이병의 제안에 형 정도현 이병 역시 흔쾌히 뜻을 같이 했던 것.

 

당시 형은 코넬대 기계공학과에 동생은 시카고대 경제학과에 재학중이었다. 그러나 내 손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로 유학을 중단한 이 시대의 진정한 훈남 형제임이 틀림없다.

 

현재 형제는 북한과의 거리가 7km밖에 안 되는 ‘말도’라는 외딴 섬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중이다.

 

 

 

 

 

쌍둥이 형제 소식 듣고 장학금 기부한 ‘중졸 사장’

 

 

서울로 상경해서 고생 끝에 자수성가 했다는 이야기…드라마나 영화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스토리다.

 

그런데 여기 그 막연한 이야기를 현실로 만든 한 사람이 있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김원길 사장이 주인공. 그는 보통의 경우라면 부모님 밑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며 투정부리고 있을 18살의 나이에 혈혈단신 상경했다.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경제적 부담 탓에 고등학교조차 가기 힘든 상황이어서 영등포에 작은 구둣가게에서 일했다.

 

현재 김원길 사장은 한 해 매출 400억 원 이상이라는 신화를 달성하며, 컴포트 슈즈 업계에서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사업가이다. 하지만 요즘 ‘잘 나가는’ 그에게도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군대 이야기 하는 남자들이다.

 

그는 젊은 시절 방위로 분류됐지만, 당시 소집 대상자들이 넘쳐 그마저도 경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여 종종 군대 이야기를 할 때면 부러운 마음이 들 었다고 한다. 늘상 군대에 대한 아쉬움을 갖고 있던 그였기 때문이었을까? 쌍둥이 형제의 해병대 동반입대 소식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요즘 힘든 일이 닥치면 어디론가 도피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유학중인데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해병대에 자원했다는 소식에 감동 받았다. 그래서 그 대견한 형제의 용기를 응원하고자 장학금을 주기로 결심했다. 각각 1,000만원씩 모두 2,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하지만 장학금을 전달 받은 쌍둥이 형제는 역시 남달랐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했을 뿐인데 특별한 대우 받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 끝에 그 장학금을 더 좋은 곳에 쓰고자 해병대에 모두 기부, 세상에 더 큰 감동을 안겨준 것.

 

 

 

 

 

‘돈’이 아니라 ‘나눔의 정신’만을 받다!

 

세대차도 나는 데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을 연결해 준 그 끈은 무엇이었을까? 한 쪽은 최종학력이 중졸로 자수성가 끝에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님이고, 다른 한 쪽은 명문대에 유학중인,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학생들이다.

 

언뜻 보기에 쉽게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이 둘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갖고 있던 공통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18살이라는 나이에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작은 구둣가게를 시작했던 그 확고함. 그리고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히 선택한 일에서의 최고만 생각한 묵묵함이야말로 김원길 사장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싶다.

 

쌍둥이 형제 역시 얼핏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산 것처럼 보이지만, 보통의 곱게 자란(?) 아이들과는 생각이 너무나 달랐다. ‘젊었을 때 조국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가졌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가진 아버지의 영향 탓이었는지, 언제고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면 먼저 솔선수범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들. 그 생각이 필요한 순간 고민의 여지없이 바로 입대를 결심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한바퀴를 돌아도 6km밖에 안 되는 작은 섬에서도 국토방위를 위한 작은 밀알이 되고 있다.

 

이렇게 내면이 닮은 그들이 가진 하나의 공통점이 더 있었다. 바로 ‘나눔의 정신’이다. 출발은 김원길 사장님에게서 시작됐다. 신문에서 쌍둥이 소식을 접하고 익명으로 장학금을 전달 했던 것.

 

하지만 쌍둥이 형제는 해야 할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는 생각에 그 돈을 받을지 말지 고민했고 ‘돈’이 아니라 ‘나눔의 정신’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그 장학금을 수령했다고 한다. 그리고 쌍둥이 형제는 그 장학금을 다시 나눔의 정신을 확산하는데 사용했다. ‘개인이 아니라 해병 대원의 대표로 받았다’는 생각에 자신들이 헌신하고 있는 해병대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 나눔 릴레이는 해병대 2사단, 해병대 전우회, 해병대 사령부까지 그 수령지가 확대되며 또 하나의 해병정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자랑스러운 해병대 형제의 행보와 앞날을 계속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