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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의 지난 이야기/2011-2015

[우리시대의 장인] 서울시 무형문화재 청목 김환경 채화칠장 & 지상갤러리


 



 

 

 

서울시 무형문화재 청목 김환경 채화칠장

 

 

청목 김환경은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공예의 아름다움, 특히 채화칠기의 다양한 매력을 선보여온 이 시대의 장인이다. 채화칠기란 나무나 흙으로 만든 기물(器物)에 옻칠을 먹이고 채색안료로 색을 입힌 작품을 말한다. 청목은 이러한 채화칠의 진수를 보여주는 새로운 작품을 오는 10월 27일부터 11월 6일까지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갤러리에서 대거 선보일 예정. 한해에만 수백여 종의 스마트폰이 출시되는 무서운 속도의 세상이지만, 그런 세월을 딛고 면면이 이어온 전통의 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월간 <HIM>이 찾은 우리 시대의 장인, 시리즈의 첫 시작은 김환경 채화칠장이다.

 

 

 

전통 채화칠의 계승과 현대화를 위해 한 평생

 

 

운보 김기창, ‘장인정신이 절절한 공예가’라 평해

 

‘프랑스 국립 베르사유 특별전’ ‘피카소와 모던아트전’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 ‘오르세미술관전-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 중앙언론사들이 주최하며 최근 미술가를 장악해 온 대형 전시회에는 익숙하면서도 우리의 전통 명인에 대해 낯선 이들을 위해 청목 김환경을 소개한다. 운보 김기창 화백은 1998년 청목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청목은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열정과 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듬뿍 지닌 사람이다. 단순히 생각해 볼 때 나의 작업과 청목의 채화칠기 작업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재료를 준비하고 작품의 주제를 설정하고 이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되기까지의 수많은 과정과 혼신의 힘은 지극히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노력할 줄 아는 사람, 장인정신이 가슴 절절히 스며있는 공예가, 작품 제작을 위한 식지 않는 열정,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등 나열하자면 너무나 많은 정신과 사상이 담긴 사람이 바로 내가 아는 청목 김환경이다.”

 

청목은 채화칠기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명인이다. 천년을 이어온 채화칠기의 아름다움이 그의 손끝에서 다시 피어났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인정받고 있다. 지난 1961년 입문 이래 50년 외길을 걸어온 서울시 무형문화재, 남들이 그리 주목하지 않던 전통공예 분야에서 한 예술가가 몰두한 무려 반 백년의 집념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청목에겐 여전히 이어야 할 천년 역사의 소임이 있다. 우리의 전통 채화칠기를 계승한다는, 아니 단순 재현을 넘어 미학적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바로 그만의 ‘업(業)’이다.

 

그런 청목에게 얼마전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G20 정상회의였다. G20을 준비하며 청와대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G20 기간에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로 청목 선생에게 특별히 작품을 의뢰한 것이다. 당시 고르고 고른 홍송(紅松)으로 틀을 짜고, 옻칠만 9번을 바르는 등 각고의 심혈을 기울여 청목이 작업한 채화칠기의 정식명칭은 ‘수국채화칠 화장품함’으로 아모레퍼시픽의 한방화장품 ‘설화수’가 담겼다. 한국의 고유한 전통미를 보여주는 명품 케이스에 우리나라가 만든 명품 화장품을 더한 선물로 G20 영부인들과 각국 관계자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한편 청목과 설화수의 합작은 지난 2007년 ‘진설 채화칠기 기획세트’를 포함해 이번이 네 번째였다고.

 

 

 

명품관 갤러리에서 펼치는 전통 칠기의 미학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4호 청목(靑木) 김환경 채화칠장은 오는 10월 27일부터 11월 6일까지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얼 명품관 롯데갤러리(9F)에서 특별초대전을 갖는다. 지금까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적지 않은 전시회를 가져왔고 수상경력도 화려하지만, 이번 초대전은 청목 자신에게도 특별하다.

 

서울 중심의 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청목은 현대적으로 재해석 한 전통미학을 선보이며 한해 수백종의 스마트폰이 출시되는 속도의 시대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우리의 가치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건칠 항아리와 오브제 형상 외에도 현대 회화로서 채화칠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품들과 다양한 채화가 눈에 띈다. 옻칠을 이용한 채화칠은 그 색채가 유화나 수채화보다 무게감이 있고 따뜻한 것이 특징. 특별초대전을 앞두고 서울 구기동의 청목옻칠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심한 몸살을 앓아 수척한 얼굴이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욕심에 며칠 동안 밤샘 작업을 하며 몸이 많이 상해 있었던 것. 사실 인터뷰와 사진촬영이 며칠 동안 계속 연기됐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포토그래퍼가 말했다. “장인의 수척한 모습, 사진상으로는 괜찮으니 흑백으로 갑시다!” 청목과 전통공예와의 첫 인연은 1961년 시작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 전승공예가 김진갑 선생이 운영했던 옻칠 목기공예 공방에 들어간 청목은 이후 50년 가까이 나전칠기, 목칠기, 조칠 등을 두루 거쳐, 채화칠기의 재현과 창작을 위한 외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청목의 작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제가 칠공예를 시작한 지 5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늘 부족하고, 진정한 전통의 참맛이 무엇인지 완전히 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승께 매를 맞아가며 배워온 칠의 참맛을 언젠가 알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여전히 작업에 매달리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청목은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1989년 현대미술전 대상, 1996년 국제 이시가와 칠 디자인전 특별상,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장 표창, 2002년 부시대통령상 수상, 2006년 대한민국문화예술대회 공예부문 대상 등 한 페이지를 훌쩍 넘는 수상경력에서 대략 간추린게 그 정도다.

 

또한 빌 게이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등 우리나라를 찾은 많은 해외 유명인사들이 청목의 채화칠기 작품을 갖고 돌아갔다고 한다. 나전칠기는 들어봤어도 채화칠기는 모른다구요? 월간<HIM>을 보는 ‘고급 독자’들이니 만큼, 이쯤에서 약간의 공부 좀하자. 나전칠기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아도, 채화칠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 더더욱이다. 나전칠기는 광채 나는 자개조각을 붙이고 그 위에 옻칠을 한 것을 말한다. 반면 채화칠기는 생칠의 바탕 위에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 분말과 광물성 혹은 식물성 안료를 배합하여 다양한 색과 문양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르다.

 

여기서 우선 현대에 더욱 각광받는 옻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옻칠이란, 옻나무에 상처를 내어 흘러나온 칠액을 정제한 다음 기물에 칠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칠화란, 옻칠과 천연안료를 혼합하여 채칠(彩漆)을 만든 다음 기물의 내외면에 문양을 시문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 만들어지는 칠공예품이 채화칠기. 우리나라에서 옻칠을 공예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B.C 3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충남 아산 남정리의 청동기 시대말기 유적에서 칠막이 발견되었고, 경남 의창군 다호리 목관묘에서 원형칠두와 방형칠두 등 20여점의 무문칠기가 출토됨으로써 이미 기원전에 칠기를 제작한 민족으로 밝혀졌다.

 

한편 채화칠기가 엄청난 발전을 이룬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경주 천마총 벽화, 백제 무열왕릉 출토 채화유물 등은 세계적 국보라 해도 과언이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채화칠기는 사군자나 길상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으나, 주로 목기에 치중하다 보니 점차 나전칠기를 사용하게 됐다. 그마저 일제 강점기 나전칠기가 엄청나게 번성하며, 채화칠기

는 점차 잊혀지게 되었던 것. 채화칠기의 특성은 옻칠과 안료의 배합으로 간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화사하면서도 은은하고 중후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있어 어떤 화학도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장점 때문에 계승 발전되고 있는 것.

 

하지만 작업상의 공정이 매우 까다롭다. 색을 만드는 과정도 오랜 체험에서 얻어지는 것이므로 장인정신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청목 김환경은 채화칠기의 매력이 심미적인 면에만 있는 것 아니라고 말한다. 건강 기능성 때문에 현대에 더욱 각광받고 있다는 것.

“옻은 습기에 강하고, 불에 잘 타지 않고, 음식을 담았을 때 쉬 상하게 하지 않고, 피부에 좋으며, 암에 효과가 있는 등 그 기능성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옻과 함께 섞는 안료 역시 광석과 열매, 진주, 조개껍질 등 자연에서 얻은 것들로 화학 안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채화칠기는 크게 7가지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먼저 초기 단계에서는 형태를 구상해 백골(白骨, 옻칠을 하기 전의 목기나 목물)로 틀을 짜는 ‘바탕 고르기’, 백골의 면을 사포로 갈아 고르게 하는 ‘바탕 바로잡기’를 한다. 그 다음은 초칠(묽은 옻칠)을 해나무가 옻을 잘 흡수하도록 만드는 ‘바탕칠’이다. 바탕칠이 완료된 표면에는 모시·명주·베 등을 붙이는 ‘천바

르기’를 해 건조시킨다. 그후 ‘천옻칠’ ‘ 중칠’‘상칠’을 거쳐 그림을 그려 넣으면 채화칠기가 완성된다. 좋은 채화칠기의 관건은 색(色)이다. 청목은 자연스러우면서도 특색 있는 빛깔을 내기 위해 석황, 주석, 이끼,열매 말린 것 등을 옻칠에 섞어 독자적인 방식을 완성했다.

 

 

 

시간과 싸워 이겨내고 진정한 장인으로 거듭나다

 

전남 광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청목의 유년기 꿈은 신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 꿈을 접어야 했다. 서울 장충단 공원에서 노숙하던 그는 숙식을 제공해준다는 말에 목가구집으로 들어가 백골 짜는 일을 배웠다. 이후 1975년에 독립해 1976년부터 채화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청목의 굵직한 수상 경력은 그가 채화칠기에 쏟았던 애정의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도 그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외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국내 제일의 채화칠장 기술 보유자라는 오늘날의 그가 되었다. IMF 경제위기로 집을 잃고, 설상가상 제자들까지 떠나보냈을 때에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한 우물만 파내려간 청목의 우직함은 2004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1-4호로 지정되며 빛을 발했다.

 

청목은 사람들이 자신을 장인으로 불러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생계유지를 위해 시작한 일이 업(業)이 되고, 그 업을 통해 장인으로 불리게 된 삶. ‘이만하면 만족할 만한 삶’이라고 긍정한다. 현재 청목 선생은 자신을 장인으로 만들어준 채화칠기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청목옻칠연구소를 설립·운영하며 우리나라 채화칠기의 전승과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그가 이토록 열성적이 된 데는 1979년 ‘한국 나전칠기보호육성회’ 사찰단과 함께한 일본 방문이 계기가 됐다. 나전칠기보다 채화칠기가 각광받던 일본의 칠기문화는 그 원류를 한국에 두고 있었다. 낙랑의 옻칠 문화가 고구려로 이어지고, 다시 백제와 일본으로 전파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원조’격인 한국에서 채화칠기의 명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에 청목 선생은 사명감을 갖고 한국 채화칠기 발전에 힘쓰게 된 것이다. 그는 채화칠장으로서 자신의 사명이 ‘채화칠기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라는 인식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퍼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채화칠기는 역사와 전통 면에서 분명 우위에 있음에도 크게 각광받지 못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지나며 화려한 나전칠기가 유행하면서부터는 더욱 그 설 자리가 좁아졌다. 이에 대해 청목은 제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려는 사명감을 지닌 사람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열악한 인식 속에서 채화칠장으로 우뚝 섰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장인이 됐다.

 

 

 

채화칠기의 역사와 기법

 

우리나라에서 옻칠을 공예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BC 3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남 아산 남정리의 청동기시대 말기 유적에서 칠막이 발견되었고 경남 의창군 다호리 목관묘(BC 1세기)에서 원형칠두와 방형칠두 등 20여점의 무문칠기가 출토됨으로써 이미 기원전에 칠기를 제작한 민족으로 밝혀진 것. 옻칠이란 옻나무에 상처를 내어 칠액이 흘러나오면 이를 수거하여 정제한 다음 기물(器物)에 칠하는 것을 말한다. 천연원료와 옻칠과 배합하여 만들 색칠(채칠)을 알맞은 온도와 습도에 의해 건조된 기물의내면 또는 내외면에 칠하기도 하며 무늬를 시문하기도 한다. 세필로 무늬를 그리는 묘칠기법과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덧칠을 하여 건조한 다음 덧칠을 갈아내어 무늬가 나타나게 하는 마현전칠기법이 있다. 이외에도 주감전칠기법과 묘금기법 등이 있는데, 이런 기법들을 이용하여 만들어지는 작품을 칠화라 한다. 칠화의 특성은 옻칠과 안료의 배합에 의해 우러나오는 간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화사하면서도 은은하고 중후한 느낌의 아름다움이 있어서 그 어떤 화학도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장점 때문에 계승되고 있다. 작업상의 공정이 매우 까다롭고 색칠을 만드는 과정도 오랜 체험에서 얻어지는 것이므로 장인정신이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청목 김환경은 이와 같은 채화기법을 익히고 색칠을 건조시켜 만든 건칠분을 사용하는 또 다른 가식기법을 터득, 생칠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건칠분이나 금분을 뿌리는 기법으로 다양한 작품을 창조하

고 있다.

 

 

 

그렇다면 건칠이란?

 

건칠의 역사 : 건칠은 주로 근대에 쓰이는 용어로 초기에는 건칠 조각상에 이용되었고, 현재는 공예, 고고분야에서도 사용된다. 또한 칠로서 불상을 제작할 경우 ‘협저상’ 혹은 ‘칠상’이라고 불렀다. 한국의 문헌에서는 통일시대에 건칠상이 있었다고 한며, 유품으로는 고려말로 추정되는 보살형좌상이 알려져 있다. 사찰에 있는 불상 대부분은 목불이며 건칠불을 모시고 있는 사찰은 소수에 불과한데, 건칠불이 드문 이유는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건칠 제작기법 : 먼저 새끼줄로 형태를 만든 후, 석고를 바르고 다듬어서 옻칠을 3~4회 올린 다음, 그 위에 다시 삼베를 바르고 옻칠을 올리는 과정을 반복하여 총 30~40회 정도의 옻칠과 삼베를 입히는 작업을 거쳐 형태가 완성되면 2~3개월 보관한다. 그후 새끼줄과 석고를 제거하고 사포로 연마한 뒤 그 위에 옻칠을 4~5회 올리고 다시 사포로 연마하여 화병의 표면을 고르게 한다. 그 위에 색칠(채칠)이나 건칠분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올린다.